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9일 대검찰청을 방문해 각 검찰청과 부서별 특수활동비 지급 및 배정 내역 검증에 나섰다.
이번 특활비 검증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일 국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특활비를 주머닛돈처럼 쓰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대검 감찰부에 특활비 조사를 전격 지시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상임위에서 "윤석열 총장이 측근이 있는 검찰청에는 특활비를 많이 주고 마음에 안들면 조금 준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추 장관은 "군내 사조직처럼 검찰 조직내에서 친정체제를 구축하는데 사용했다는 의혹이 많다"며 맞장구를 쳤다.
추 장관은 그러면서 "사건이 집중된 서울중앙지검에는 최근까지 특활비가 지급되지 않아 수사에 애로를 격는다는 얘기도 듣는 형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예산편성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수집이나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등에 사용되는 경비다.
영수증도 필요없는 경우가 많아 '눈먼 돈'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활비는 청와대를 비롯해 국가정보원과 검찰, 경찰 등 안보·사정기관에 주로 배정된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특활비 규모는 청와대 181억원, 국정원(안보비 포함) 7055억원, 국방부 1194억원, 경찰청 745억원 등이다.
법무부 특활비 예산은 193억원으로 이중 약 93억원이 검찰에 배정됐다.
이중 법무부 검찰국이 대검에 내려보내기 전 미리 떼간 액수가 1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검찰국은 검사의 인사· 예산을 담당하는 곳으로 수사나 첩보 활동과는 무관하다.
그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특활비 사용내역을 꼼꼼이 검증하고 투명하게 공개하자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문제는 여권이 왜 이 시점에 윤 총장의 검찰 특활비만 콕 집어 문제삼으려 하는 것이냐다.
검찰 안팎에선 "대전지검 형사5부가 수사 중인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의혹과 관련해 윤 총장이 지난달 29일 대전지검을 방문했을 당시 특활비 집행내역을 감찰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즉, 윤 총장이 특활비까지 줘가며 월성원전 수사를 독려한 단서를 확보해 이번 수사가 윤 총장이 개입한 정치적 수사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수사 자체를 무마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권으로선 윤 총장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윤 총장이 특활비를 사적 용도로 쓴 사실까지 드러날 경우 윤 총장을 조기에 낙마시킬 수 있다는 판단도 했을 법 하다.
하지만 검찰총장이 각 지방검찰청을 순시할 때 수사와 업무 격려 차원에서 특활비를 지급해 온 것은 검찰 조직의 오랜 전통이다.
더구나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이 작성한 '김영란법 Q&A'해설서에도 상급 공직자등이 위로, 격려, 포상 등의 목적으로 하급 공직자에게 제공하는 금품 등은 처벌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대전에서 윤 총장이 특활비를 사용했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셈이다.
다만, 윤 총장이 특활비를 제대로 배분하지 않고 일부라도 사적으로 썼다면 그것은 도덕적 비난을 넘어 법적 책임을 지는게 당연하다.
이에 대해 대검은 "윤 총장이 1원 한푼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관련 증빙을 모두 남겨 놓았다"는 입장이다.
추 장관이 의혹을 제기한 서울중앙지검에도 예년처럼 매달 5000~7000만원씩 배정했다는 게 대검의 설명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왕 특활비 검증을 하려면 검찰 뿐만 아니라 청와대의 특활비 사용내역까지 검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특활비 사용처를 모두 확인해 유용 사실이 적발되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원에서 특활비 35억원을 상납받은 혐의(국고손실, 뇌물)로 유죄가 확정됐다.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특활비 제공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청와대 특활비 논란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보름만인 2017년5월25일 대통령 특활비와 특정업무경비(127억원)를 42% 줄이겠다고 했고, 2018년에도 특활·특경비 예산을 31% 줄이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대통령 가족 식사와 조·중·만찬 및 간식 비용도 월급에서 빼겠다고 해 국민들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청와대 특활비는 지난해 181억원(비서·안보실+ 경호처)으로 다시 늘었고, 올해도 같은 규모의 액수가 배정됐다.
집권 초 국민에게 했던 약속과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시민단체의 특활비 공개 요구에는 "안보 등 민감한 사항이 포함돼 공개땐 국익을 현저히 해칠 것"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야당 시절 특활비 폐지를 외쳤던 현 정권이 집권 후 국민의 혈세를 쓰면서도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사서의 하나인 중용(中庸)을 보면 이런 말이 나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랫사람을 능멸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원망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신들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우면서 상대편에겐 가을 서릿발처럼 매서운 여권의 이중적 행태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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