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포항의 미드필더 이명주는 황선홍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포항스틸러스의 유스팀인 포철중과 포철공고를 거쳐 영남대에 진학한 이명주는 2학년을 마치고 지난해 포항에 입단했다. 본인도 도전 의지도 강했고 무엇보다 황선홍 감독의 영입 의지가 컸다. 괜찮은 물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판단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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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의 품에서 태어나 큼직한 황새걸음을 찍어나가던 이명주가 또 다시 큰 보폭으로 큰 발자국을 찍고 있다. 대한민국의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의 분수령이 될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을 앞둔 최강희호에 승선한 이명주는 단순한 합류가 아닌 출전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레바논전에서 최강희 감독은 초짜 이명주를 베테랑 김남일의 파트너로 점지하는 분위기다.
이름값이나 선입견 그리고 주위의 목소리보다는 자신이 확인한 능력을 바탕으로 소신 있게 선수단을 운영한 최강희 감독이지만, 무게감이 상당한 경기에 A매치 경험이 전무한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은 부담이 따르는 선택이다. 게다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하는 중앙 미드필더라는 점도 고민을 더 깊게 만들었을 것이다. 허리에서 밀리면 전방의 공격력도, 후방의 수비력도 함께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강희 감독은 중책을 이명주에게 맡기려하고 있다. A매치 97회에 빛나는 베테랑 김남일의 파트너는 A매치 데뷔전을 치르는 이명주가 될 공산이 크다.
박종우가 ‘독도 세리머니’ 징계여파로 출전하지 못하는 영향도 있으나 결국 일주일가량의 훈련과정 속에서 이명주라는 젊은 미드필더의 능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명주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한국영이라는 다른 카드를 꺼내들 수 있었다. 또는 김보경을 중앙미드필더로 돌리고 전방의 배치를 달리하는 전형도 생각할 수 있었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추진할 상황도 아니고, 지금은 실험할 여건도 아니다. 월드컵 본선행이 걸린 중요한 승부에서 초짜를 선발로 낙점했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명주의 가장 큰 장점은 두둑한 배포를 앞세운 당당함이다. 프로데뷔 시즌이던 지난해 이명주는 “대학시절 프로선수들과 연습경기를 하면서, 또 올림픽대표팀에서 프로출신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두려움보다는 이 정도면 붙어볼만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이 두둑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남들은 외국인 선수가 없어 어렵겠다고 말하지만, 난 국내 선수들끼리 더 재밌고 짜임새 있는 축구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서 어려운 포항의 처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의 배짱은 허풍이 아니었다.
파주NFC에 처음 들어오던 날 “처음이라 어색하다”면서 머리를 긁적였으나 붉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이명주의 당돌한 자신감은 결국 최강희 감독의 눈도 사로잡은 모양새다.
포항스틸러스 선수단이 생활하고 있는 송라의 클럽하우스 한쪽 벽면에는 창단 후 국가대표팀을 거친 수많은 포항 선수들의 얼굴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구단의 자랑스러운 역사다. 당연히 황선홍 감독도 있다.
올해 초 그곳에서 만났던 이명주는 그 벽을 가리키면서 “저기에 내 얼굴은 언제 올라갈 수 있을까 생각하고, 반드시 올라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 당시만 해도 그냥 웃고 넘어갔다. 그런데 불과 5개월 만에 그 다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성큼성큼, 스승을 닮은 황새걸음이다.
센추리클럽 가입에 3경기가 부족한 김남일도 A매치 데뷔전이 있었다. 새내기 시절이 없던 베테랑은 없는 법이다. 김남일이라는 거침없
이명주의 레바논전 출격은 일종의 모험수이자 도박수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또 10년을 보장하는 한 수일 수도 있다. 결과는 겁 없는 새끼 황새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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