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지난 2011년 겨울, 전북을 그해 K리그 정상으로 올려놓았던 최강희 감독은 달콤한 휴식을 꿈꾸고 있었다. 2009년에 이어 2년 만에 가장 높은 곳으로 복귀한 터라 홀가분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재충전의 시간을 통해 몸도 마음도 살찌워 다시 내년을 도모하고자 마음먹었고 있었다. 그런데, 쉴 팔자가 못 되었다.
최강희 감독은 그해 12월 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내내 고사했으나 조중연 전임 축구협회장을 비롯한 축구계 선후배들의 간곡한 삼고초려에 더 이상 등 돌릴 수 없었다. 누군가는 짐을 지어야한다는 사명감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한다는 책임감으로 ‘독이 든 성배’를 들었던 최강희 감독은 1년6개월의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8회 연속 본선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배에서 내려왔다.
최강희 감독이 드디어 봉동이장으로 컴백한다. 못 견디게 그립던 수수한 꽃을 만나러 가는 최강희 감독의 마음은 설렌다. 쉬지 못해도 즐겁다. 사진= MK스포츠 DB |
전북의 이철근 단장은 “최강희 감독이 많이 고생했다. 어려운 일을 해내고도 고생했다는 위로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도 그 사람, 한 마디 말을 않는다. 최강희라는 사람의 스타일이다. 책임감도 강하고 입도 무겁다. 자신이 책임을 다 끌어안는 스타일”이라면서 “우리 입장에서야 빨리 복귀했으면 싶지만, 우리 생각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최강희 감독에게 어느 정도 휴식을 주고자 한다”는 말로 복귀 시점을 다소 늦추겠다는 뜻을 전했다.
만약 6월18일 이란과의 최종예선 최종전에서만 유종의 미를 거뒀다면 최강희 감독은 지난 26일 수원과의 원정부터 바로 전북의 지휘봉을 잡을 공산이 컸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가 결과도 내용도 좋지 않았던 터라 곧바로 ‘봉동이장’으로의 컴백은 무리가 있었다.
전북 관계자들도 “여러 정황상 6월 내 복귀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7월부터나 다시 지휘봉을 잡지 않으실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실상 열흘 남짓한 휴가는 필요해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쉬는 것과는 인연이 없는 팔자인가보다.
최강희 감독은 지난 26일 수원과의 원정경기를 ‘몰래’ 지켜봤다. 하프타임 때 공교롭게 눈이 마주쳤던 최 감독은 손가락을 세워 입에다 가져다 대면서 조용히 보고 싶다는 무언의 뜻을 전했다. 전반전을 전북이 3-2로 앞서나가고 있었기에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경기 후 또 다시 공교롭게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최강희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4-5로 역전패 당한 탓이다.
이튿날이던 28일, 전북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강희 감독의 컴백 소식을 알렸다. 수원전 패배가 최강희 감독의 책임감을 더 이상 넋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최강희 감독은 구단을 통해 “수원전을 보니 팀의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너져 있었다. 내 욕심만 채우기 위해 휴식을 취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말로서 복귀를 알렸다. 오는 30일 경남과의 홈경기가 ‘봉동이장’의 복귀전으로 결정됐다.
사실, 그 다음 홈경기인 7월3일 성남전에 초점을 맞춘다한들 크게 문제될 것 없는 상황이다. 그 정도쯤 쉬었다 돌아가도 최강희 감독을 향해 이기적이라 말하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누가 종용하지도 않았다. 최강희 감독의 ‘팔자’가 스스로를 쉬지 못하게 했다.
대표팀 사령탑 시절, 최강희 감독은 사석에서 “지도자마다 유형이 있다. 난 긴 시간이 필요한 스타일이다. 짧은 기간 동안 성과를 내야하는 대표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운명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막상 와보니 더 어렵다. 후회는 없으나 역시 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봉동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면서 전북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낸 바 있다.
이어 “사람들을 잘 모른다. 전북을 이끌면서 몇 년 동안 팬들과 쌓아온 우리만의 정이 깊다. 날 기다려주고 있는 팬들을 위해서도 꼭 봉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봉동 숙소 앞 삼겹살집이 너무 그립다”며 밝게 웃었다.
많은 이들은, 최강희 감독이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도 대표팀에서 떠날 것을 이야기하자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월드컵이라는 ‘화려한 꽃’을 마다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장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최강희 감독에게는 들판에 핀
못 견디게 수수한 꽃을 그리워하던 최강희 감독이 드디어 봉동으로 돌아간다. 역시 쉴 팔자는 못되는가 보다. 하지만, 지금 최강희 감독의 마음은 푹 쉴 때보다도 홀가분하고 설렐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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