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특급 불펜 정현욱이 흔들린다. 철옹성을 과시하던 LG 트윈스의 불펜도 위태롭다. 그런데 정현욱이 웃었다.
올 시즌 LG의 상승세 유지 비결은 든든한 마운드다. 팀 평균자책점 3.48로 9개 구단 가운데 1위에 올라있다. 지난해까지 불안했던 마운드를 강하게 바꾼 시작점은 줄무늬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정현욱의 합류다.
LG 트윈스 불펜 특급 정현욱이 최근 떨어진 페이스에 흔들리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LG가 6월까지 66경기를 치르는 동안 수치상으로 따지면 이틀에 한 번 꼴로 등판을 한 것이다. 정현욱은 평균자책점 2.34, 2승3패 2세이브 13홀드를 기록하고 있지만, 체력적으로 과부하가 걸릴 수 있는 시점이다. 실제로 4월부터 꾸준히 피안타율이 높아졌다. 4월 10경기서 2.00을 기록했던 피안타율이 5월 11경기 2.89로 높아졌고, 6월 11경기서는 3.43으로 치솟았다.
정현욱은 지난 2일 잠실 한화전이 장맛비로 취소되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쉴 수 있는 날이 하루 늘었기 때문. 정현욱은 “쉴 수 있어서 좋다.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며 하늘을 바라봤다. 이어 정현욱은 “솔직히 지금 페이스가 떨어졌다.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털어놨다.
정현욱이 5월 이후 과부하가 걸린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시즌에 나서는 패턴 자체가 달라졌다. 정현욱은 “삼성에 있을 때는 4~5월에 몸을 조금씩 끌어올린 뒤 7~8월에 최상의 몸을 만들었다. 하지만 LG에 오면서 몸을 일찍 만들어 시즌 개막에 맞췄다”고 했다. 이적 이후 첫 시즌 성적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정현욱은 “내가 와서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되니까 시즌 초반부터 뭔가 보여줘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LG의 경기 내용이다. LG는 시원하게 이긴 경기가 많지 않다. 대부분 접전 상황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불펜이 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 차명석 투수코치도 불펜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 이유로 지적했던 부분이다.
정현욱은 “우리 경기가 크게 이긴 경기 없이 항상 접전이다보니까 계속 등판을 해야 했고, 또 긴장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며 “삼성에 있을 때는 크게 이긴 경기가 많아서 며칠 동안 등판을 하지 않아 일부러 컨디션 조절을 하기 위해 나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정현욱은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도 쌓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신의 구위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마운드에 올라서도 자신감이 떨어졌다. 정현욱은 “페이스가 떨어지니까 걱정도 되고 부담도 되더라”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던져야 하는데, 자꾸 마운드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정현욱은 서용빈 코치와 면담을 했다. 서 코치는 정현욱에게 “페이스와 구위가 떨어진 것을 인정하고 그냥 던져라”고 조언했다. 정현욱은 “그게 아는데 잘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정현욱은 체력 보충을 위해 삼성에 있을 때보다 보양식도 늘었다. 산삼을 비롯해 몸에 좋다는 것은 뭐든지 찾아 먹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어 많은 경기수를 소화하다 보니 체력 회복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정현욱은 웃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든든한 불펜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현욱은 “내가 못 던지더라도 다른 투수들이 잘해준다. 또 다른 투수들이 페이스가 떨어지면 내가 하면 된다”며 “(봉)중근이에게는 조금 미안하다”고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정현욱은 처음 LG에 합류했을 때 많이 놀랐다. 삼성과 전혀 다른 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 LG 선수들 사이에서는 짙은 패배의식이 깔려있었다. 당시 정현욱은 “가장 먼저 바꾸고 싶은 것이 우승할 수 있다는 자세”라고 했다.
신바람 야구를 일으키며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는 LG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정현욱은 “그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선수들이 경기에 나설 때마다 생각도 많이 하고 계산도 하기 시작했다”며 “이를테면 지
유니폼을 벗고 말끔한 사복으로 갈이입은 정현욱은 “우리 선수들이 야구와 승부 자체를 즐기고 있다. 나도 이제 좀 쉬면 다시 페이스가 올라올 것”이라고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떨어지는 빗방울 맞으며 야구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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