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예로부터 1루수는 거포의 상징적인 포지션이었다. 호쾌한 장타를 날리는 선수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 메이저리그는 1루수 포지션의 장타력 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더군다나 올해 FA 시장에 나오는 1루수는 흉작을 넘어 재앙수준에 가깝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택지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는 이대호의 입장에서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최근 메이저리그 1루수와 지명타자의 경쟁력은 확실히 예년만 못하다. 최근 몇 년 간 꾸준히 젊은 거포들이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외야수나 1루수를 제외한 내야 포지션에서의 성장한 영향이 컸다. 거기에 전통의 노장 거포들의 기량이 급감하면서 1루수들의 타격 성적이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현재 메이저리그 1루수 포지션은 장타력 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 잔류와 메이저리그 진출의 다양한 안을 선택 중인 이대호도 경쟁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전망이다. 사진=MK스포츠 DB |
▲ 이대호, ML 성적 하락폭 크지 않을수도?
이대호는 한국 무대서 정점을 찍은 2010년과 2011년, 각각 1.111과 1.011의 OPS를 기록했다. 특급 타자의 기준인 OPS 9할을 훌쩍 넘어 리그를 폭격했다. 지난해 일본 진출 첫 해에는 8할4푼6리의 OPS를 기록했는데, 이는 퍼시픽리그 1위에 해당한다. 반발력이 적은 공인구인 통일구를 사용했던 지난해 일본은 역대 유례없는 투고타저 시즌이었다. 선전을 넘어선 놀라운 활약이었던 것. 특히 진출 첫해에도 리그 수위 타자의 경쟁력을 여전히 유지하며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그런 면에서 이대호의 올 시즌 성적은 매우 준수했지만 진출 첫해보다는 다소 기대치에는 못 미쳤다. 타율 3할3리 24홈런 91타점 출루율 3할8푼4리, 장타율 4할9푼3리 OPS 8할7푼8리를 기록했다. 전체적인 성적은 올랐지만 반발력이 큰 공인구로의 교체효과를 완벽하게 보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대호가 미국으로 건너간다면 어떨까. 일본에서 미국으로 진출한 타자들의 경우는 성공사례가 많지 않다. 성적 하락폭이 컸거나 장타력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지만 같은 잣대를 사용하기에 통일구 시대 이후 일본으로 건너 간 거포 자체가 많지 않고, 수준의 차이와 개인차가 있기에 단순비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공을 맞추는 능력이 뛰어난 중장거리형 거포인 이대호의 스타일상 리그 변화에 따른 성적 하락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미 일본에서도 입증한 부분이다. 이대호는 일본 리그서 현미경 야구의 집중견제에 시달렸다. 또한 리그 최하위 팀인 오릭스에서 홀로 타선을 이끌려 팀 동료들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대호의 누적성적이 드러난 기록보다 더 가치 있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대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타율 2할8푼, 17홈런 70타점, OPS 7할 중후반을 기록하면 이미 1루수 리그 평균정도가 된다.
극심한 투고타저의 일본 진출 첫 해 퍼시픽리그 OPS 1위를 기록한 이대호인만큼 메이저리그 진출 성적 하락폭은 예상보다 크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많다. 사진=MK스포츠 DB |
올해 메이저리그 중위권 이하의 팀들과 상위권 특정 몇 개 팀들은 1루수 찾기에 애를 먹었다. 특히 1루수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지명타자의 경우에는 아메리칸리그 팀들이 큰 돈을 쓰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당장 올해 1루수 OPS가 7할 초반과 7할 미만에 머무른 텍사스, 콜로라도, 밀워키, 필라델피아,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미네소타 등이 1루수(지명타자)가 필요한 팀들이다. 전력 보강의 가능성이 충분한 팀들이 공격력면에서 문제점을 보였고, 특히 1루수들의 파워가 장타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 시장에 나올만한 1루수들은 거의 없다. 있어도 몇 명의 노장들이 전부다. 결국 에이전트의 협상력에 따라 이대호도 행선지를 찾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대호는 현재 오릭스로부터 연봉 3억5천만엔(약 38억2천만원)에 2년 계약 정도를 제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 계약금 2억엔에서 3억엔 정도의 추정치를 포함하면 총액은 10억엔(109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서도 2년간 1000만달러 수준이면 이대호를 잡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결국 관건은 조건이다. 지난 5월 MK스포츠의 일본 현지 취재 당시에도 이대호는 “도전 의지는 있지만 헐값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연평균 500만달러 정도는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 특히 한국인 선수들은 마케팅 측면에서도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있기에 연봉보전이 가능하다.
관건인 몸값만 맞다면 이대호의 진출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진=MK스포츠 DB |
걸림돌은 결국 수비-주루 능력과 올해 한국나이로 32세가 되는 나이다. 이대호는 수비에서 특별한 강점을 갖고 있는 선수가 아니며, 주루 능력은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이 점에서 강점을 보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경우도 1루수와 지명타자를 소화하는 선수들의 수비-주루 능력은 출중한 편이 못된다. 수비력이 좋은 1루수들이 있지만 공격력과 수비력을 모두 겸비한 1루수는 많지 않다. 앞서 1루수들의 순수 파워의 감소를 언급했으나, 여전히 포지션의 기대치는 공격력에 쏠린다. 떨어지는 수비-주루능력이 진출의 선택폭을 줄일 수는 있지만 한계로 발목을 잡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내년 한국 나이로 33세가 되는 것이 걸림돌이다. 아직 메이저리그서 검증이 되지 않은 이대호의 입장에서는, 물리적으로 최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에서 장기계약을 얻기 어렵다. 팀으로서도 큰 투자를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연 평균 300만달러에서 500만달러 수준에 3년 이상의 계약을 보장하는 팀이 나타난다면 충분히 도전을 선택해 볼만한 환경
지난해 류현진의 ML 진출 이전에 쏟아졌던 의심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대호의 진출 의지와 여러 환경들이 맞아떨어진다면 우리는 또 1명의 메이저리거 타자를 보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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