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올해는 어렵다는 것이 전북현대를 바라보는 안팎의 중론이었다. 대표팀에서의 소임을 마치고 지난 6월말 전북으로 돌아온 최강희 감독도 “이 정도로 팀의 밸런스가 깨져 있었을 줄 몰랐다”는 말로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10월11일 현재 전북은 모든 팀들을 따라잡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현재 K리그 클래식 1위는 15승11무6패로 승점 56점을 획득한 포항이다. 2위가 전북이다. 승점이 56점으로 같다. 골득실에서 포항(+17)보다 단 하나 부족(+16)하다. 심지어 포항보다 1경기 덜 치렀다. 1위와 다를 것 없는 위치다. 정규리그 뿐이 아니다. FA컵은 결승에 올라 있다. 이대로라면 ‘시즌 더블’도 가능하다. 고개를 가로젓던 최강희 감독도 비로소 미소를 짓는다.
최강희 감독은 전북으로 돌아온 미팅 첫날 선수들에게 목표를 제시했다. 정규리그도 우승, FA컵도 우승하겠다는 야망이었다.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
전북의 새로운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최강희 감독에게 이제는 내년이 아닌 올해를 바라봐도 되겠다는 칭찬 겸 덕담을 전하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는 “전북으로 복귀한 뒤 첫 미팅 때 선수들에게 그랬다. 올해 목표는 우승이라고. FA컵도 당연히 우승이라고 첫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최강희 감독은 “리더가 목표를 평범하게 잡거나 한계를 정하면 안 된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올해는 3등 안에 들어서 ACL 출전권만 따내도 성공이다, 라고 말하면 분명이 그 밑으로 떨어진다”면서 “무리하게 목표를 잡는 것도 문제 있으나 한계를 긋는다면 선수들은 역량을 끌어낼 수 없다”는 자신의 지도철학을 전했다.
덧붙여 “한 경기는 이기기 위해서 싸우고 리그 전체는 우승을 위해 뛰는 것이다. 결승전에서 지려면 차라리 예선 탈락하는 것이 낫다. 프로에서 2등이란 소용이 없다”면서 승부사 기질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이럴 땐 ‘봉동이장’은 사라지고 ‘강희대제’가 등장한다. 최강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5년 이후, 전북이 K리그의 헤게모니를 바꿔 놓을 수 있었던 이유다.
최 감독은 “우승을 했던 2011년에는 정말 멤버가 좋았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때처럼 만들어야한다. 지도자는 끊임없이 욕심을 내야한다”면서 “이제 전북은 3~4등으로 팬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팀이다. 두 번의 우승 이후 기대치가 높아졌다. 당연히 우리는 목표를 정상에 두고 승점 1점이 남아도 끝까지 잡아야한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푸근한 봉동이장 뒤에 겹쳐진 냉철한 강희대제의 진두지휘와 함께 전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경기력이나 운영능력을 보진 않겠다고 했다. 경기가 끝난 뒤 걸어 나올 힘이 없을 정도로 120%를 발휘하자는 주문만 했다. 당연히 우승이 목표라고 했으나 워낙 팀이 망가져 있어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선수들에게 고맙다. 빠른 시간 내에 집중해줬고 내가 말한 것들을 믿어줬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선수들 스스로 자신감이 붙었다”는 말로 대견함을 전했다.
내년을 도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최강희 감독은 오늘을 보고 있다. 봉동이장의 푸근함 뒤에 강희대제의 승부사 기질이 숨어 있다. 전북은 감독이 둘이다. 사진= MK스포츠 DB |
이럴 때 우리는 ‘감독’이라는 인물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시즌 시작과 견줘 감독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전북은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최강희 감독에게 놀라움을 전하자 “국어책에 나와 있지 않은 이야기”라며 웃었다. 딱히 설명키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에둘러는 표현했다.
최 감독은 “매사 그런 것 같다. 기업도 그렇고 팀도 그렇다. 선두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크게 좌지우지 된다. 개인적으로 스포츠 감독들이나 리더들과 관련된 책을 많이 보는데 뭔가 독특한 스타일과 철학이 있다. 하지만 결국 공통점은, 믿음이다”는 말로 따라오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최강희 감독은 “참 잘한다, 왜 그렇게 못하느냐, 이런 이야기가 많은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믿으면 그대로 맡기면 된다”는 지론을 밝혔다. 믿음 속 기다림 쯤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침이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최강희의 기다림은 어쩌면 스파르타보다 잔인할 수 있다.
최 감독은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 자신이 얼마나 애절하게 축구를 대하느냐다. 난 29살에 국가대표가 됐다. 그전에는 놀기도 많이 놀았지만 이후로는 집 축구장 훈련장 밖에 몰랐다. 저녁 10시에 자고 오전 6시면 일어났다. 그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분명 애절하게 운동하면 서른 살이 넘어도 축구가 늘더라. 이것을 선수들이 알았으면 한다”는 충고를 전했다.
더해 “적당히 하는 선수는 미친 듯이 하는 선수에게 지고, 미친 듯이 해도 죽을 듯이 뛰는 선수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 죽을 듯이 단계를 넘어가면 이제 즐기게 되는 것이다. 벼랑 끝까지 가야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요즘 선수들은 거기를 가지 않으려 한다”면서 “난 다그쳐서 그곳에 데려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방법을 가르쳐주고 환경을 마련한 뒤에 기다린다. 아마도 이것이 더 괴로울 것”이라며 음흉한(?) 미소를 전했다.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왜 전북이란 팀의 분위기가 좋은지, 분위기는 좋은데 왜 훈련은 고되다고 입을 모으는지, 그리고 왜 전북이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내는지, 다 이유가 있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봉동이장과 바늘 끝 위에서 싸우는 승부사 강희대제의 지도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전북에는 감독이 둘이다.
최강희 감독은 “내 입으로 ‘닥공’이라 말한 적은 없으나, 어쨌든 올해 ‘닥공’은 어렵다. 모험을 걸 수 있는 스쿼드가 아니다. 올해는 이대로 가야한다. 화려한 축구, 공격적인 축구보다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기는 축구를 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끝으로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게 FA컵 결승이다. 지금 구성으로 결승까지 올라간 자체도 대단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결승전에서 지는 것은 중간에 떨어지는 것만 못하다. 더군다나 홈에서 열리는 경기 아닌가. 무조건 이 경기는 잡아야한다. 남은 기간 동안 선수들과 준비를 잘 해서 반드시 승리
당연히 올 시즌은 내년 시즌을 위한 디딤돌 정도로 여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최강희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최강희 감독의 말처럼 내년을 도모했다면 성과는 후년에 나타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봉동이장만 돌아왔는지 알았는데 강희대제도 함께 왔다. 지금 전북에는 감독이 2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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