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전성민 기자] 원로 야구인 김양중씨가 10월 27일 낮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인은 지난해 대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해왔다.
김양중씨는 한국 야구의 역사와 함께 했다. 광주서중(광주일고 전신)을 나온 고인은 해방 직후 경남중 출신의 고(故) 장태영씨와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야구불모지 호남에서 야구 부흥을 이끈 산증인이다.
두 라이벌은 1949년 제4회 청룡기 대회 결승전에서 만났다. 김양중씨는 0-1로 뒤진 9회말 2사 2루에서 장태영씨를 상대로 중전 적시타를 쳐 동점을 만들었다. 광주서중은 기세를 몰아 11회 결승점을 뽑아내며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전에서 11이닝을 책임진 김양중씨는 청룡기 우수투수상을 받았다. 영호남 라이벌 시대를 연 순간이었다.
라이벌 관계는 계속됐다. 김양중씨가 기업은행, 장태영씨가 상업은행 감독을 맡으면서 지도자로서도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국내 최고의 좌완 투수였던 김양중씨는 한국 야구 최초의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1954년 필리핀 마닐라 아시아선수권에 참가했다.
김양중씨는 직구로 정면승부를 하는 투수였다. 1958년 10월 21일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한국에서 첫 내한 경기를 치렀을 때 김양중씨는 자신의 진가를 선보였다.
배용섭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나선 김양중씨는 9이닝 7피안타 4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6회에는 강타자 스탠 뮤지얼을
김양중씨는 1961년 선수로서 은퇴한 후 1962년 기업은행 초대 감독을 맡았다. 김성근 최관수 배수찬 이건웅 김점생 등 수많은 스타 선수들을 길러냈다.
1966년 기업은행 감독에서 물러난 김양중씨는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지점장까지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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