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강윤지 기자] 김동명(27)은 ‘막내 구단’ KT 위즈의 기대주다. 지난해 퓨처스리그 79경기에 주로 4번타자로 나서 타율 3할5푼6리(북부리그 4위) 17홈런(4위) 57타점(5위) 장타율 6할2푼8리(3위) 출루율 4할9푼8리(1위)로 고르게 상위에 랭크됐다. 특히 거포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2007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로 지명돼 1군서 통산 6경기에 나섰던 김동명은 누구보다 KT가 1군에 진입하는 올 시즌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예비 슈퍼스타’다. 지난 14일 수원KT위즈파크서 훈련을 마친 김동명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동명은 2007년 포수로서 많은 기대를 받고 삼성에 입단했지만 2013년 11월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신생팀 KT 위즈로 팀을 옮겼다. 그리고 성장했다. 이제는 KT의 첫 번째 프랜차이즈 스타로 거듭날 차례다. 사진=강윤지 기자 |
김동명은 많이 알려진 것처럼 삼성의 포수 유망주였다. 그리고 조범현 감독은 지난 2012년 11월 삼성 마무리캠프에 포수 인스트럭터로 초빙된 이후 KT 감독으로 선임되기 전까지 김동명을 비롯한 삼성의 여러 포수들을 가르쳤다. 그 때 조 감독과 연을 맺은 김동명은 2013년 11월 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조범현 감독이 있는 KT로 팀을 옮기게 됐다.
김동명은 팀을 옮겼을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얼떨떨했던 감정이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2013년 삼성 마무리캠프로 일본에 가서 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차 드래프트 발표 날이 됐는데, 나는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해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훈련 도중 갑자기 매니저가 KT에 가게 됐다고 짐을 싸라고 하는 것이다. 삼성에서 워낙 오래 있어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장난인 줄만 알았다.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서도, 한국에 와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KT 전지훈련지였던) 애리조나에 가서야 ‘내가 진짜 KT에 왔구나’ 생각했다.”
팀을 옮기자마자 고민이 시작됐다. 김동명은 이미 삼성 캠프서부터 포지션을 전향하며 타격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던 상황. 하지만 조 감독은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만큼 포수로서 성공할 가능성을 알아보고 선택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김동명은 “감독님이 기대 많이 하셨을 텐데, 전향한다는 말을 하기 힘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KT로 오면서 ‘다시 포수를 해야 되나?’ 싶었다. 매일 아침 아픈 어깨와 싸우는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KT에 합류해서 포수 장비까지 지급받고 투수들 공을 받고 그렇게 3일 정도 했던 것 같다. 그 때 마음이 잡히지 않았던 게 드러났던지 코치님이 정말 하기 싫은 애처럼 보였다고 하셨다. 결국에는 감독님께 먼저 포수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감독님은 조금만 더 생각해보라고 하셨는데 며칠 후에 다른 포지션으로 수비 연습을 시작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전향이 이루어졌다. 안 잡히던 마음이 그제야 단단하게 정립이 됐고 그 다음부터는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전향을 마친 김동명은 1루수와 외야수로 번갈아 출장하면서 2014시즌을 퓨처스리그서 보냈다. 처음 포수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포수로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렸다. 그렇지만 김동명은 2년을 고민한 자신의 선택을 믿었다. 타격에 집중하면서 실력이 업그레이드됐다. 김동명은 “그런 것들을 이겨내 자신감이 올라간 게 지난 시즌 가장 큰 성과였다”고 말한다.
▲2015시즌, 또 한 번의 변화를 앞두고
김동명은 새 시즌에 앞서 또 한 번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 시즌 주로 1루수로 출장했던 그는 장성호, 김상현 등의 1루 기용 고려와 맞물려 현재 외야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창단팀 주전으로 뛰고 싶다”는 목표를 가진 김동명이기에 내야든 외야든 1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한 팀 내 경쟁을 펼쳐야만 한다.
하지만 김동명은 “나는 경쟁이라는 말이 참 불편하다”며 “의미부여를 하면 불편할 것 같아 너무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일단 스스로 준비를 잘하고 있다. 캠프에서도 또 마음 다잡고 할 거고. 그 이후는 감독님 판단인 것 같다”고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지난 시즌 1루와 외야를 6:4나 7:3 정도의 비율로 나눠서 출장했다. 스스로 평가하기에 내야수로는 엉망이었고 외야수로는 조금 괜찮았다. 야구 하면서 포수만 했었다. 내야수는 어렸을 때부터 쭉 밟아오면서 땅볼을 읽을 수 있는 눈이 필요한데 나는 그게 없다. 외야 같은 경우는 잘 뛰어 다니고 공 보고 잘 판단할 줄 알고 이러면 좀 많이 는다고 하더라”면서 “솔직히 1루든 외야든 상관없다. 뛸 수 있다면 감사하다”고 덧붙인다.
▲ ‘슈퍼스타’ 꿈꾸는 ‘야구바보’
2015시즌, 김동명의 존재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는 한 해다. 그에게 2015년 새해 소망을 묻자 “기도를 정말 많이 했다. 너무 많이 해서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라고 하면서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야구 잘하게 해주세요, 수원의 슈퍼스타가 되게 해주세요, 돈도 많이 벌게 해주세요 등등 정말 많이 빌었다. 그런데 그런 건 정말 막연한 것 같고 그냥 1군에서 야구하고 싶다”고 답한다.
김동명은 ‘팬들의 사랑에 목마른’ 선수다. 그는 “삼성에 들어갔을 때 인기 팀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2군에만 있고 하니까 의기소침했다. 원래는 활발한 성격인데도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하게 지내고 했었다”고 말한다.
사실 김동명은 삼성 시절서부터 많은 팬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잘생긴 외모 덕분에 여성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아왔다. 김동명은 “관심은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부족했다. 내가 원하는 곳은 더 높았기 때문이다”고 말하며 “그러니까 그게 과한 욕심이었다. 준비는 안 되어 있는데 말만 앞서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었다. 지금은 말을 아끼려고 한다. 내가 더 만들어놓고 그 때 되서 큰소리를 내고 싶다”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김동명은 삼성의 김헌곤, 김상수 등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갑내기 친구인 김헌곤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서 결승득점을 올리며 ‘영웅’이 됐고,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았던 김상수는 프로 데뷔 첫 해부터 삼성 내야의 단단한 한 축이자 ‘대구 아이돌’이다. 김동명은 “원래는 부러워했다. 아파서 공을 아예 놓고 공익 생활하고 이럴 때는 잘하고 있는 애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미칠 뻔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달라졌다. 작년에 애리조나에서부터 준비했던 건데, 너무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가는 것보다 스스로를 가다듬고 운동할 수 있는 몸을 만들고 타격 기술을 만들려고 했다. 지금도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물론 부럽지만 내가 내 것을 준비하고 있고 부족하면 또 보완하면 되니까, 다르다.”
그의 현재 닉네임은 ‘야구바보’다. KT로 팀을 옮기고 포지션 전향을 하면서 딸밖에 모르는 ‘딸바보’처럼 야구만 바라보고 야구를 여자친구 삼아 올인 하겠다고 SNS 프로필에 적어뒀던 의지의 표현이 어느덧 팬들에게 불리는 닉네임이 됐다.
“‘야구바보’라는 말이 참 예쁜 것 같다. 삼성 시절에도 매일 2군이나 재활군에 있고 하는데도 나는 흔
‘야구바보’는 지금 ‘KT의 첫 프랜차이즈 스타’로 거듭나는 꿈을 꾸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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