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적어도 2015년의 심수창(34·롯데 자이언츠)은 그렇다. ‘롯데시네마’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별칭을 얻은 롯데 마운드에서 심수창은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하나다.
프로야구 선수 중 미남을 꼽으라면 단연 심수창이 1등이었고, 스포트라이트는 주연급이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미래가 기대되는 정통파 오버스로 투수였다. LG 트윈스 시절인 2006년 10승을 거두며 에이스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후에는 불운의 아이콘으로 유명해졌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프로야구 최다연패 기록인 18연패를 당했다. LG에서 넥센 히어로즈로 팀을 옮기고 나서야 연패를 끊을 수 있었다.
↑ 사진=안준철 기자 |
“외로웠죠. 휴일에 커피 마실 사람도 없었어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그리고 프로생활을 모두 서울에서 했기 때문에 부산 생활은 낯설었다. 그나마 같은 고교(배명고) 1년 선배인 김성배, 김승회가 있어서 나았지만, 2군과 3군이 있는 김해 상동구장에 머물게 되면서 외로움은 커졌다. 그래서 야구를 관둘 결심도 했다. 하지만 그를 붙잡은 것은 야구선수로서의 자존심이었다. “심수창이 아직도 야구를 하고 있냐는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한물 간 주연배우와 같았던 그는 변화를 시도했다. 3군에 머물던 때 그는 장난으로 팔을 내려서 던졌다. 그러나 그 장면을 진지하게 본 사람이 있었다. 당시 3군 코치였던 이종운 감독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심수창의 구속은 올라가기 시작했다. 최고구속은 147km까지 나왔다. 이종운 감독은 “30대 중반의 투수가 몇 년 간 인상 깊지 못한 활약을 펼친다면 진지하게 변화를 고려해봐야 한다”며 심수창의 변화를 지지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스리쿼터로 변신해서 결과가 안 좋을 경우, 위험부담이 매우 컸습니다. 감독님은 아예 팔을 내릴 것으로 권하셨습니다만 저는 병행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감독님께서 용기를 많이 주셔서 위축되진 않았습니다.”
오버스로와 스리쿼터. 변칙적인 투구는 심수창을 2015시즌 롯데 5선발로 자리 잡게 했다. 140후반대의 속구와 전성기를 능가하는 포크볼에 상대 타자들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심수창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래도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심수창은 잘 던졌지만 야수들의 수비실책과 불펜 투수들의 방화가 심수창을 다시 불운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결국 심수창은 마무리 투수를 맡을 것을 제안 받는다.
“솔직히 선발로 승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팀에 보여준 게 없었어요. (김)성배형이 2차 드래프트로 롯데로 와서 잘하는데, 내가 못해서 2차 드래프트로로 온 선수의 좋은 기억을 깨기도 싫었습니다. 팀이 원하는 자리에 가는 게 저를 인정해준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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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던지는 법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지만, 스리쿼터를 병행하면서 허리와 하체를 이용하는 방법에 눈을 떴습니다. 거기에 만족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취득하는 심수창은 “아직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물갔다고 평가를 받던 주연배우는 이제 명품조연으로 돌아왔다. 궂은 역할도 가리지 않는다. 연기를 하는 게 즐겁다는 조연배우의 고백과 흡사한 음성이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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