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극적인 연장승부와 기적 같은 뒤집기 경기가 크게 늘었다. 전 구단이 마무리 투수를 갖고 있는 지금, 이렇게 막판 역전극이 흔하게 나온다는 얘기는 그만큼 온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마무리 투수들이 드물어졌다는 뜻도 된다.
↑ 각팀의 마무리는 중요한 보직인 만큼 장기적인 육성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18일 현재 세이브 5위권인 삼성 임창용, SK 윤길현, 넥센 손승락, 한화 권혁, KIA 윤석민. 사진=MK스포츠 DB |
리드 상황 마지막 이닝에 마무리를 올릴 때, 벤치는 ‘이겼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상대 타선은 ‘끝났구나’라는 절망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마무리가 등판했는데 아군이 ‘잘 막아줄 수 있을까’라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고, 상대가 ‘끝까지 간다’를 외치며 항전을 결심하는 그림이 펼쳐진다면, 이미 마무리의 의미는 잃은 것이다. 그저 다음 릴리프 투수가 나온 것일 뿐.
그런 의미에서 오승환(한신)이 떠난 이후의 KBO는 ‘카리스마 마무리’의 부재시대를 겪고 있다고 생각된다. 진정한 ‘끝판왕’의 위엄이 풍기는 마무리 투수들이 극히 드물어 보인다.
잡을 경기를 확실하게 잡는 데 집중하면서 팀마다 불펜의 관리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도 좀처럼 위압적인 마무리 투수들이 나타나지 않고, ‘뒷문 불안’이 여러 팀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현상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왜 제대로 된 마무리가 없을까. 이 질문을 바꿔 던져봐야 한다. 마무리를 제대로 키워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팀들이 마무리를 ‘선택’한다. 마무리를 ‘육성’하는 데에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마무리 투수의 가장 흔한 탄생 경로는 선발 투수의 전향이다. 이 과정에서 그 투수의 특성 보다는 팀의 사정, 주변 투수의 상황에 대한 고려가 더 크게 작용한 경우도 많다. 마무리라는 보직을 맡을 때부터 완전치 않은 출발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마무리 투수는 매우 특수한 스펙을 요하는 자리다. 짧은 시간 워밍업이 능해야 한다. 단시간에 근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신체적인 조건을 갖춰야 한다. 제구력과 빠른 볼, 집중력과 담력에서 다른 보직과는 분명히 다른, 매우 높은 수준의 ‘필수’ 조건이 요구된다.
이렇게 골고루 기능적인 조건을 갖춘 투수들을 가려 뽑은 뒤 완벽한 마무리로 키워가는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즉 마무리 투수를 만들어내는 ‘육성’ 노하우를 축적할 필요성이 있다.
신체적인 조건에 보태야 할 스펙이 멘탈과 요령이라면, 긴장 상황에 대한 등판,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무리 투수를 길러내는 코스로는 ‘선발→마무리’ 전환보다 ‘승리조→마무리’ 진화가 더 이상적인 루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운드 분업화가 정착된 지는 이미 오래됐는데, 가장 중요하고 특수한 보직인 마무리 육성 시스템은 변변히 연구조차 되고 있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
리그에 믿을 만한 마무리 투수가 없다는 비판을 들을 때 마다 시즌 직전에 선발 자원 중 선택했거나, 중간에 낙점하는 경우도 흔한 다음에야 당연한 현실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이미 많이 논의되고 다들 잘 알고 있는 ‘기용법’ 마저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 경우도 늘었다.
2이닝을 넘게 쓰는 마지막 투수는 마무리가 아니다. 완벽하게 막아내라는 기대를 품을 수도 없다.
안심할 수 있는 마무리를 제대로 키워내지도, 제대로 쓰고 있지도 못한 상황에서 팀들의 뒷문 불안은 자꾸 자꾸 출제되는 숙제 같다. 답을 풀어야 같은 문제가 그만 나올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