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윤진만 기자] “현수, 라이트백 한 번 서는 게 어때?”
9월3일 라오스와의 월드컵 2차 통합예선에 소집 기간 중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55)이 장현수(24, 광저우R&F)를 호출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너를 오른쪽 수비수로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현수는 얼떨떨했다. 센터백 외 포지션을 소화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 “대학, 청소년 대표 때는 꾸준히 센터백으로 뛰었어요. FC도쿄 시절 오른쪽 수비수가 경고 누적을 당할 때 2번 정도 그 위치에서 뛴 적이 있을 뿐이죠.”그마저도 별로 좋은 활약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감독실에 들어가기 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어 놀라지는 않았단다. “명단을 보니 라이트백에 (임)창우 1명뿐이었고, 센터백은 저 포함 5명이었요. 설마, 기동력이 부족한 나를 그 위치에 세울까 싶었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죠.(웃음)” 장현수는‘오랜 시간 생각했다. 보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보기 싫다고 말해라. 그게 아니라면 한번 뛰어보라’는 감독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제 포지션도 중요하지만, 국가대표팀에 왔다면 경기에 뛰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 중 브라질 대표팀과 FC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다니 알베스를 콕 집어 언급했다. 오버래핑과 크로스에 능한 정상급 수비수의 활약을 공부한 뒤 경기에 나서라는 지시였다. 센터백을 돕는 라이트백? 아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순수 라이트백을 담당하길 바랐다. “알베스 영상을 많이 봤어요. 저와는 극과 극이던데요? 알베스처럼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웃음)” 그는 그만의 방식대로 헤쳐나가기로 했다. 전력 차가 심한 라오스전에선 팀이 주도권을 잡은 덕에 마음껏 공격에 가담해 알베스와 같은 부메랑 크로스로 권창훈의 이단 옆차기 골을 돕기도 했지만, 까다로운 레바논과 쿠웨이트 원정에선 조금 더 수비에 집중하며 팀의 무실점 승리를 도왔다. “지난 3경기에서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열심히는 뛰었다고 자부합니다. 하다 보니 배울 점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전속력으로 공격에 가담했다가 전속력으로 수비진영으로 내려오는 게 너무 힘들기만 했어요. ‘빨리 내려오라!’고 창우한테 자주 뭐라 했는데 그게 다 미안해질 정도로 힘들더라고요. 헌데 경기를 뛰다 보니 ‘타이밍’을 알겠더라고요. (기)성용이형이 패스를 줄 때 나는 어디에 있어야겠다, 이런 타이밍이요.”
↑ 장현수는 U-20월드컵,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모두 센터백으로 뛴 원 포지션 맨이다. 슈틸리케 체제에서 세 포지션을 두루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사진=MK스포츠 DB |
3경기에서 대표팀은 무실점 승리했다. 수비진에 대한 찬사가 따랐다. 김진수와 박주호가 경합 중인 왼쪽 수비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자리에는 김영권-곽태휘-장현수 조합이 자리를 굳힌 듯했다. 장현수는 9~10월 기준 정통 라이트백을 제치고 ‘주전 라이트백’자리를 꿰찼다. 외부의 시선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다. 이와 관련한 일화 하나.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자메이카와의 친선전에서 후반 10분경 중앙 수비수 홍정호가 부상을 호소했다. 곽태휘가 장현수에게 말했다. ‘네가 들어갈 것 같다. 몸 풀어라.’‘형, 저 아시잖아요.’‘아, 니 (라이트백으로) 굳혔나?’‘네, 형. 저 굳힌 것 같아요.’‘음, 그럼 나네.’ 후반 12분 홍정호를 대신해 중앙 수비수로 뛴 선수는 곽태휘였다. 장현수는 후반 41분 정우영을 대신하여 수비형 미드필더로 4분 남짓 활약했다. “머릿속으로는 (라이트백으로)굳히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김)창수형이 아주 잘해서 그런지 감독님께서 나를 수미(수비형 미드필더)로 세우시더라고요. 경기가 끝나고 생각했죠. 이번에는 감독님께서 또 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생각하시나?”
장현수는 A매치 데뷔전(vs이란)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뛴 기억이 있다. 지난 1월 호주와의 아시안컵 결승전, 지난 8월 동아시안컵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슈틸리케 체제에서 센터백,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등 세 포지션을 모두 뛴 유일한 선수다. 그는 과거에는 머릿속으로 정리가 안 됐다고 털어놨다. 취재진이 ‘이번 경기에는 어느 포지션에서 뛸 것 같아요?’라고 질문하면 정해진 포지션이 없다는 생각에 쉬이 답을 못했다. 마음은 당연히 주포지션이고 가장 자신 있는 센터백을 원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에 소집하여 경기를 못 뛰고 돌아가는 것 보다야 어느 포지션이라도 뛰는 게 낫다는 생각도 분명 있었다. 장현수는 지난 1년 슈틸리케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주: 가장 많은 19경기를 뛰었다.) 속에 스스로 결론에 다다랐다. 어디에서든, 어떤 임무든, 받아들이기로. 센터백의 한은 소속팀 광저우에서 풀기로.
↑ 지난 15일 서울 광진구 모 카페에서 "MK스포츠"와 만난 장현수. 사진=윤진만 |
“솔직히 수비형 미드필더든, 라이트백이든, 제대로 소화할지 몰랐어요. 제가 뭐 특출난 게 없잖아요. (이)청용이형은 볼 센스 (권)창훈이는 체력, 드리블 (곽)태휘형은 공중볼 (김)영권이형은 킥, 경기 운영 (김)진수는 다부지고, 빠르고 (이)재성이는 양발 잘 쓰고 (황)의조는 움직임 좋고…. 그에 비하면 저는 ‘밋밋’해요. 게임으로 치면 평균 능력치 50인 그런 선수죠. 하지만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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