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임재철(39·롯데)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아직은 젊은 선수들과 경쟁을 해도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도 여전했다. 늘 모범적이고 성실했던 17년 현역 선수생활로 다져진 준비된 선수였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임재철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했다. ‘나’가 아닌 ‘후배들’을 위한 자리를 내주기 위해 현역 연장의 욕심을 버렸다. 임재철은 “내가 야구 말고 다른 무엇을 하겠나? 이제 후배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 롯데 자이언츠 베테랑 외야수 임재철(39)이 그라운드를 떠난다. 사진=MK스포츠 DB |
임재철은 지난 1999년 롯데에 입단한 뒤 올해까지 17년간 6차례 팀을 옮기며 롯데 삼성 한화 두산 LG 등 5개 팀 유니폼을 입었다. 롯데에서 시작해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임재철은 개인 통산 15시즌 동안 1139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6푼1리 30홈런 231타점 358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임재철은 현역 시절 동안 실책을 단 25개밖에 기록하지 않을 정도로 타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고,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범적인 선수생활로 늘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임재철이 롯데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은 것은 지난달 28일이었다. 롯데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납회식이 있던 날이다. 미래를 약속하는 자리에서 임재철은 작별을 통보 받았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컸다.
“누구나 그만 둬야 할 때는 다가온다. 나도 그런 시기를 늘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단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방출 통보를 받는 것과 내가 안 될 것 같다고 느끼고 그만 두는 것은 다르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다 내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감독님도 바뀌고 젊은 팀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몸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스스로 세워둔 목표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도 운동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그의 목표는 현역 선수생활 17년이 아닌 20년이었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도 체력도 떨어지지 않았고 문제가 없다. 내 목표였던 20년을 채우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내 또래는 별로 남지 않았다. (이)승엽이보다 1년만 더 오래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욕심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집사람과도 상의해서 지금이 때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련이 남은 것은 최근 2년의 성적이다. 임재철에게 기회가 없었다. 지난해 LG에서 53경기, 올해 롯데에서 38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임재철은 “잘하고 싶었다. 마지막에 내가 잘했어야 했는데,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면서도 “롯데는 가능성이 충분한 팀이다. FA로 손승락을 비롯해 좋은 선수들을 데려왔다. 멤버는 정말 좋다. 팀이 하나로 단합만 하면 가능성이 많다. 내년에 꼭 한국시리즈를 갔으면 좋겠다”고 후배들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롯데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은 그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프로 생활의 첫 발자취였기 때문이다. 임재철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은 것도 롯데 신인 시절이었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프로에 처음 들어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첫 타석에 들어서 정민철 선배와 상대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1999년 플레이오프 때 마지막으로 홈플레이트를 밟았을 때도 기억이 생생하다.”
↑ 롯데에서 시작해 롯데에서 마감한 임재철. 6번의 이적, 5개 구단의 유니폼을 입은 임재철은 두산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8년을 뛰었다. 사진=MK스포츠 DB |
이젠 아쉬움을 뒤로하고 제2의 야구인생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다.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는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후배들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은 많았다. 은퇴 이후에도 변함없는 열정이다.
“현장에서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야구와 관련 된 어떤 일이든 하고 있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든 후배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 2, 3군 선수들을 보면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후배들이 많더라.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런 절박함이 없는 친구들을 가르쳐주고 싶다.”
임재철은 롯데로 이적하면서 가족과 함께 부산에서 터를 잡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방출 통보로 짧은 부산 생활을 접고 다시 짐을 싸야 할 상황이 됐다.
“잘 하려고 가족과 함께 내려온 건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까 아쉬워도 할 수 없다. 가족들이 한 곳에서 있어야 하니까 다시 서울로 올라가긴 해야 할 것 같다. 딸이 아빠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았는데, 미안한 마음도 든다.”
임재철의 은퇴 소식에 팬들의 안타까운 목소리도 크다. 그에게도 큰 위로가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아끼고 응원해준 팬들이다. 그는 “그래도 내 은퇴 기사에 달린 댓글은 좋더라. 그게 감사한 일이다”라며 웃었다. 이어 “열심히 잘해 왔는데 마지막 2년을 좋은 모습 못 보여드려 죄송한 마음이 크다. 항상 열심히 성실히 하는 선수로 기억해주시고 날 뽑아주셔 감사드린다. 지도자가 되더라도 항상
임재철은 현역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애써 비웠다. 지금은 마음을 정리하고 또 다른 전진을 위해 쉼표가 필요할 때다. 그의 마지막 말이 참 ‘재철스럽다’.
“인생에 마침표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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