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야구선수 김현수(27)를 가까이서 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간 ‘야구기계’로만 알았던 김현수는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정말 ‘야구선수’였다. 늘 스스로를 다그치는 노력형 선수. 화려하지 못했던 첫 출발. 생존이 목표였던 그 시절부터 끊임없이 프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던 지난 10년. 이제 메이저리그까지 모든 도전은 운명과도 운명과도 같다.
# 입시비리 희생양, 포수-1루수-좌익수 전전했던 김현수
김현수는 신일고등학교 3학년 대한야구협회 주관 대회 통산 3할7푼을 기록하며 통산 48번째 ‘이영민 타격상’을 탔다. 타격 능력만큼은 정평이 났던 김현수. 하지만 그는 결국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두산의 신고선수(육성선수)로 입단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김현수 스스로는 당시를 떠올리면서 가자 아쉬웠던 기간이 바로 어울리지 않는 포수라는 옷을 입으면서 잃어버린 1년이다. 언젠가 모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김현수는 “신일중학교를 졸업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신일고에 입학하게 됐다. 그런데 이후에 나는 포수로 뛰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 김현수의 야구인생은 늘 도전이었다. 사진=MK스포츠 DB |
이후 해당 감독이 입시비리로 감독직을 내려놓으면서 그제서야 김현수는 자신의 포지션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고정이 아니었다. 김현수가 고교시절 뒤늦게 두각을 보였고, 결국 수비 능력에서는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지 못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환경이기도 했다. 장타력이 부족하고 특정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강점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김현수는 결국 프로지명에 고배를 마셨다. 대학진학에 대한 손길도 있었지만 과감히 두산 육성선수 입단을 택했다.
# 괴물신인, 그리고 슬럼프...“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
2006년 두산 입단 이후 1경기에 나선 김현수는 2007년 99경기서 타율 2할7푼3리 87안타 5홈런 32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펼쳤다. 성실하고 근성있는 김현수의 훈련 모습을 눈여겨본 당시 두산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 결과.
2008년 역사적인 타율 3할5푼7리를 기록하며 ‘타격기계’의 탄생을 알린 김현수는 2009년과 2010년까지 20개 이상의 홈런과 3할을 훌쩍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정확도와 장타력이 동반된 김현수의 위력은 당시 KBO리그에서 가장 완벽한 타자로 꼽혔다.
더 완벽해지고 싶었던 김현수는 파워향상을 위해 몸집을 키우고 새로운 타격폼으로 야심차게 2011년을 맞았다. 그러나 되려 타율이 3할에서 턱걸이(3할1리)를 하고 장타율이 4할4푼4리로 급감했다. 이어 2012년 타율이 2할9푼1리 7홈런 65타점에 그치는 최악의 부진을 겪자 사람들의 시선은 급격하게 냉랭해졌다. 팀의 중심타자로 부상에도 결장할 수 없었던 김현수의 남모를 고충은 그를 향한 평가들과 거품처럼 모두 사라졌다.
이후 2013년 타율 3할2리 16홈런 90타점으로 반등한 김현수는 2014년 전반기 다시 주춤한 시즌을 보냈다. 많은 타자들이 기록적인 정도의 타고투저의 해를 맞아 엄청난 성적을 올리던 당시였다. 특히 민병헌과 오재원은 연속 안타 기록을 매일 경신하며 3할중반대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하며 펄펄 날고 있었다.
유독 어두운 표정의 김현수에게 어느 날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김현수는 복잡한 표정으로 “모두가 저렇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 나만 여기에 그대로 있다”고 했다. 특별한 큰 부상도 없는데다 노력을 멈췄던 적도 없었다. 당시 치열한 고민들은 결국 후반기 김현수의 분전을 이끈 밑거름이 됐다.
그리고 2015년 김현수는 타율 3할2푼6리 28홈런 121타점을 기록하며 폭발했다. 잠실구장을 쓰면서 5할4푼1리의 장타율을 기록했고 출루율은 무려 4할3푼8리에 달했다. 거기에 프리미어12에서도 대표팀의 중심타자로 맹활약을 하며 초대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연말 김현수는 “올 시즌 가장 큰 성과는 내 한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스스로 제한하고 안된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는데, 노력하고 도전하면 더 올라서고 이뤄내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성공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사진=MK스포츠 DB |
김현수는 신문을 즐겨본다. 정치와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도 많다. 많은 신문을 구독하면서 읽게 한 부모님의 영향. 아침 일과가 종합지와 스포츠전문지를 꼼꼼하게 보는 일이다. 단면적인 일이지만 갇혀있는 선수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현수는 메이저리그를 즐겨보는 매니아이기도 하다. 스스로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유명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타격폼을 보고 연구도 하고, 데일리 하일라이트 영상은 시간이 날때마다 즐겨보는 편이었다.
올 시즌 전까지는 물론, 진출이 결정된 이후까지도 김현수는 ‘도전’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김현수의 마음에는 오래전부터 ‘큰 무대’를 향한 열망이 있었다. 현실적인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하면서 잠시 묻어두기도 했던 꿈. 짧은 시간 품었던 열망은 아니었다.
김현수를 발굴했고, 또한 가장 오랜시간 지켜본 지도자 중 한 명인 김경문 NC 감독은 시즌 중 이런 평가를 했다. “예전에는 힙턴 동작이 컸는데 요즘에는 한결 간결해졌다. 레그킥 동작도 거의 하지 않는다”며 “그쪽에는(MLB) 싱커나, 커터 같은 빠르게 변화하는 볼을 던지는 투수들도 많고, 변화구를 잘 구사하는 투수도 많은데 레그킥 동작이 크면 대처하기 어렵다”며 에둘러 김현수의 바뀐 타격폼이 메이저리그에서 적응하는데 더 수월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쪽 타자들은 들어왔을때 (비슷하면) 그냥 치는 편인데 현수는 선구안도 좋고 볼을 끝까지 보고 치는 유형이기 때문에 (만약에 진출한다면) 재밌는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며 김현수의 선구안을 높게 평가했다.
현재 미국 언론 들을 통해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이 높은 출루율과 선구안이다.
그런 눈에 보이는 것보다 김 감독이 김현수에게 가장 큰 신뢰를 보내는 것은 무형의 보이지 않는 힘. 노력과 꾸준함이다. 김 감독은 “고교 때 안그래도 프로지명을 못 받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이영민 타격상을 받았던 선수다. 스윙도 괜찮았다”면서 “이후 저런 성적은 꾸준히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함도 큰 부분이다. 2~3년 잘하다가 또 몇 년 못하고 다시 잘하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김현수는) 데뷔 이후에 3할을 꾸준하게 치고 있지 않나”라며 옛 제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수에 대한 평가가 정확하기로 소문난 메이저리그다. 현재 김현수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700만달러 수준의 계약에 합의하고 메디컬테스트 단계만을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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