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윤진만 기자] 2015년 심판 매수 건은 K리그에 흑운을 몰고 왔다.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심판들이 한 구단 사장이 쥐여준 돈 몇 푼에 움직였다. 전·현직 심판 4명 중 2명은 구속기소, 2명은 불구속기소했다. 경남FC 안종복 전 사장과의 만남을 알선한 1명의 심판까지 포함하여 심판 5명은 K리그에서 퇴출했다. 잘못 들어선 길 끝은 낭떠러지였다.
현장에선 너무도 손쉽게 비리 심판의 실명을 듣는다. 관계자들의 말끝에는 꼭 ’쯧쯧’이 붙곤 하는데, 그러게 왜 그랬을까, 걸릴 게 걸렸다는 투다. 수많은 축구업 종사자들은 심판 비리를 사회 정치 뉴스에서 심심찮게 듣는 ’개인 일탈’로 치부하는 듯한 분위기다.
범죄심리학 분야의 전문가 표창원(49)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심판 비리를 바라본다. 뿌리는 내버려두고 줄기만 쳐내면 얻을 게 없다는 논리다.
↑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소장은 12월 중순 MK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심판계가 "썩었다"고 하는 식으로 전체적인 부정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있지만,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사진=윤진만 |
12월 중순 K리그 신인선수 교육을 마치고 따로 만난 표창원 소장은 "공무원이 비리를 저지르듯이 그런 일이 심판계에도 일어날 것이란 생각을 미리 해야 했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축구계에선 이미 발생한 일이고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러지 못하다보니까 적발된 심판들만 범죄자, 괴물 취급을 당했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을 찾지 못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며 "최근 들어서야 교육, 처우, 배정 문제를 개선했지만 뒤늦은 감이 있다. 실효성 있는 조치를 만들었어야 한다"며 거시적 접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경찰관 출신답게 경찰 부패를 예로 들어 말을 이어갔다. "과거 경찰 부패가 심각할 때와 상황이 똑같다. 당시에도 ’어떻게 경찰이…’로 시작했다. 조직은 발각된 경찰에 강한 처분을 내렸다. 그랬더니 어떤 현상이 일어났느냐면 내부에서 (다른 비리 경찰을)적발하지 못했다. 적발하면 내부인이 결딴날 게 뻔하므로 보호한 것"이라며 ’어떻게 심판이…’란 통념부터 버릴 것을 당부했다.
표창원 소장은 ’뿌리’를 자르기 위해선 독일 축구계의 심판 자정 시스템과 1995년 발족하여 세계 민주화에 기여한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2006독일월드컵 직전 심판 승부조작 사태가 터져 월드컵 유치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빠졌었다. 이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들은 심판이었다. 같은 심판이 봤을 때 경기 운영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심판을 윗선에 보고하며 문제가 발각한 것이다. 내부적으로 자정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했다는 증거"라고 했다.
↑ 1996년 남아공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서 심사원들이 피고인의 사면을 심사 중이다. 표창원 소장은 프로스포츠, 특히 K리그 심판계에도 이러한 시스템을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사진(남아공)=AFPBBNews=News1 |
이어 남아공 인권 유린에 연루한 범죄자들을 사면 심사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예로 들며, "문제 원인을 파악하다, 진상 파악에 협조한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면 어떨까 한다. (범죄)가담 역할에 따라 주도, 방조, 묵인으로 분류해서 방조, 묵인에 대해선 본인들의 진술에 바탕으로 선처하고, 주도자를 처벌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표창원 소장은 프로스포츠의 비리가 사회 비리와 맥락이 다르지 않다고 봤다. 개인은 누구나 유혹에 빠질 수 있고, 실수를 저지를 수 있으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K리그의 심판 매수 사건과 같은 문제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충격 반응, 공포 반응, 분노 반응으로 접근하면 범죄를 알아낼 수 없다. 언제라도 이러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실효성있는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사안은 (숨길 것이 아니라)조금 더 구체적이고 정기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아들이 동북중에서 축구를 해서 나 역시 걱정이 많다. 그렇다고 심판계가 ’썩었다’고 하는 식으로 전체적인 부정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국내 범죄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표창원 소장은 경찰관 출신으로 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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