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윤진만 기자] 지난 6월 라파엘 베니테즈(55)의 오랜 꿈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단 7개월의 시간만 허락했다. 4일 발렌시아와 2-2로 비긴 뒤 레알 마드리드 지휘봉을 반납했다.
퇴장이 영 초라하다. 바르셀로나에 0-4로 대패하며 경질설이 불거진 11월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회장으로부터 신임을 약속받았으나, 스페인 언론들의 예상대로 그것은 한 달짜리 약속이었다. 카를로 안첼로티 전 감독을 내칠 때와 너무도 똑 닮은 방식이다. 차이가 있다면 안첼로티 감독은 한 시즌을 온전히 마치고 아웃, 베니테즈는 시즌 중 아웃했다.
7개월은 꼭두각시로 지낸 시간이었다. 축구방송 ‘스카이스포츠’에서 활동 중인 스페인 축구 전문가 기욤 발라계에 따르면 페레스 회장은 내림세가 뚜렷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대신 거금을 들여 데려온 가레스 베일을 팀의 중심축으로 세우길 바랐다. 베니테즈가 취임식에서 베일을 전술의 중심으로 삼겠다고 말한 것은 실은 페레스 회장의 구상일 수도 있다.
↑ 지난 6월 라파엘 베니테즈(55)의 오랜 꿈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단 7개월의 시간만 허락했다. 4일 레알 마드리드에서 경질했다. 사진(스페인 마드리드)=AFPBBNews=News1 |
하지만 베일을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우는 전술은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시즌 중 안첼로티 시대의 4-4-2로 전술 회귀했다.
전술과는 별개로 호날두 등 선임들은 베니테즈를 불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안첼로티와 다른 베니테즈의 규율은 기득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페레스 회장 입장에선 베니테즈가 자신의 의사대로 팀을 꾸려야 했지만, 동시에 선수들과도 원만히 지내야 했다. 선수단 안에서 새어 나오는 루머가 자신을 향해 날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니테즈는 '모두'와 잘 지내지 못했다. 과속 위반을 한 하메스 로드리게스, 더 많은 출전시간을 원했던 이스코를 모두 발렌시아 벤치에 앉혔다. 둘의 불만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새어 나왔다.
발라계는 "레알은 축구클럽이 아니고 비즈니스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베일부터 하메스, 토니 크로스까지 최근 페레스 회장은 한 얼굴 하는 선수들만 데려오는 것이 글로벌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레알은 다른 어느 구단보다 이미지를 신경 썼다. 이기더라도 화끈한 경기로 이겨야 하고, 중요한 경기에서 져선 더더욱 안 됐다. 베니테즈는 우승 경쟁팀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다. 더구나 경기 내용도 '지루했다'는 평이었다.
↑ 후임 지네딘 지단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궁금하다. 사진(스페인 마드리드)=AFPBBNews=News1 |
지난달 3일 카디즈와의 컵대회에선 경고누적 징계로 출전이 불가한 데니스 체리셰프를 출전시키며 팀의 몰수패를 야기한 것도 결정적이었다. 모든 책임을 감독이 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나 페레스 회장이 전면에 나서지만 실은 뒤에 숨은 현 구조상 베니테즈에게로 돌이 날아올 수밖에 없었다. 몰수패는 레알이 원하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페레스 회장은 지난 크리스마스를 마치고 레알 회원들에게 차기 설문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사에서 대다수 골수팬은 지네딘 지단의 이름을 적었다. 페레스 회장은 그 바람대로 5일 레알 B팀 감독인 지단을 선임했다. 프로 톱 리그 지도 경험이 없지만
페레스 회장은 수많은 안정적인 선택(예를 들면 안첼로티의 유임) 대신 도박(초보 감독 지단의 선임)을 택했다. 그사이에 낀 베니테즈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물러갔다. 지단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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