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윤진만 기자]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은 4년 전 대한민국과 스페인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1-4로 졌는데, 2-8로 패했어도 무방했다.” 세계 강호와 맞붙기엔 실력, 자신감 모두 뒤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적어도 지금의 대표팀은 다르다’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있었다. 위풍당당했다.
스페인전을 앞두고 자신감은 절정에 달했다. “단순한 스파링 상대가 되지 않겠다” “경기력 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남겼다. 명분을 앞세워 터줏대감인 이청용과 지금의 슈틸리케를 있게 한 황태자 이정협을 과감히 내쳤다. 이들 없이도 슈틸리케팀이 건재하단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어렵겠지만, 해볼 만하다고 믿는 눈치였다. 적어도 아시아권 내에선 몇몇 팀을 제외하면 적수가 없던 터라 큰소리치는 이유가 십분 이해 갔다. A매치 16경기 무패(13승 3무), 10경기 연속 무실점 중인 팀이 거칠 게 뭐 있겠는가.
↑ 울리 슈틸리케 감독. 그의 대표팀은 스페인전을 통해 민낯을 드러냈다. 사진(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AFPBBNews=News1 |
현실은 드라마와는 딴판이었다.
원래 구상대로라면 대표팀은 잘 짜인 조직력을 바탕으로 ‘전방 압박’으로 공을 탈취한 뒤, 공을 오래도록 ‘소유’하며 스페인을 괴롭혔어야 했다. 지더라도 한두 골 차로 패해 ‘잘 싸웠다’는 말과 함께 익숙한 박수 소리를 들으며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이정협, 이청용을 제외한 결정이 옳았다는 말도 나오면 좋았다.
현실 속에선 스페인에 내내 괴롭힘당했다. 실력 차만 놓고 볼 때, (슈틸리케 계산법에 따르면) 2-12로 패했어도 무방했다. 격려의 박수는 나왔겠지만, 국내 여론은 싸늘했다. ‘6월 1일이라 6-1로 진 거냐’는 둥 비아냥거림이 끊이질 않았다. 특정 선수를 향한 강도 높은 비난도 쏟아졌다. 예상 밖 결과, 예상 밖 반응이었다.
↑ 대표팀은 전반 3골, 후반 3골을 내주며 와르르 무너졌다. 핑계를 댈 수 없는 완패다. 사진(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AFPBBNews=News1 |
이 모습은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으로 대표되는 옛 대표팀들과 닮았다. 슈틸리케 감독의 대표팀은 곱게 화장한 얼굴로 줄곧 여론의 환대를 받았지만, 화장을 지운 ‘쌩얼’은 스페인전에서 본 바와 같이 계속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니었다. 약체에 강한 골목대장이었을 뿐, 강자에도 강한 팀은 아니란 사실이 출항 1년 8개월여 만에 드러났다.
너무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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