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송아지 엉덩이 뿔난다’ 실감 나는 일탈
마라톤 남자 대표들 훈련보다 음주가 더 관심
밤새 마시고 새벽 운전하다 교통사고 후 뺑소니
대표팀 해체-선수권대회 취소-회장 사퇴론…일파만파
육상연맹 공정위 9일 감독·선수에게 중징계
[MK스포츠] 마라톤 국가대표들의 음주운전 교통사고 여파가 일파만파로 번지며 남자대표팀 해체와 전국마라톤선수권대회 취소에 이어 대한육상연맹 배호원 회장의 사퇴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육상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전 상벌위원회)는 9일 회의를 열고 지난 5일 새벽 4시 강원도 춘천시 근화동에서 발생한 남자마라톤 국가대표 음주운전 교통사고 관련자에 대해 중징계했다. 이날 회의에서 강원도청 소속 선수인 신광식은 제명, 정의진은 자격정지 3년, 황종필은 자격정지 2년의 중징계를 받았으며 감독 소홀의 책임이 있는 최선근 국가대표 마라톤팀 총감독과 정남균 국가대표팀 코치는 보직 해임됐다. 엄광열 마라톤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자진사퇴했다. 육상연맹 스포츠공정위 관계자는 “오늘 이들에 대한 징계는 육상연맹 차상위 기관인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의 징계 기준을 그대로 적용, 일벌백계했다”고 밝혔다.
신광식 음주운전 차량에 받힌 정의진 다리 골절
이와 함께 육상연맹의 고위 임원은 “내년 도쿄올림픽에 대비, 5명으로 구성된 남자대표팀을 해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자마라톤 대표팀은 작년 11월부터 케냐에서 훈련 중인 귀화 선수 오주한(청양군청)과 이번 사건에 연루된 신광식 등 3명, 심종섭(22사단) 등으로 구성돼 내년 도쿄올림픽에 대비한 훈련을 해왔다. 이들 가운데 오주한은 작년 10월 경주국제마라톤에서 도쿄올림픽 참가기준기록(2시간11분30초)을 통과했고 나머지 4명은 올림픽 참가 기준기록 돌파를 위해 춘천에서 합숙 훈련 중이었다. 다행히 이들 4명 가운데 2016 리우올림픽 대표였던 심종섭은 4일 밤 술자리에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 취침, 구설에 오르지 않았다. 육상연맹은 남자대표팀의 해체로 국내에 혼자 남은 심종섭을 여자대표팀 코치가 지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한편 5일 새벽 면허취소 수준의 음주 상태에서 승용차를 몰다 정의진의 오토바이를 뒤에서 받고 달아나 30여 분 뒤 경찰에 검거된 신광식은 뺑소니 혐의까지 추가돼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의진은 다리가 부러져 사고 다음 날 접합수술을 받았고 황종필은 다치지 않았다. 이들 3명의 마라톤 기록은 세계기록(2시간01분39초)에 10분 이상 뒤져있어 훈련에 더욱 정진해야 할 입장인데 이날 과도한 음주와 사고에 휘말렸다.
한국마라톤, 2001년이후 세계대회 노골드 수모
최선근 감독, 정남균 코치, 신광식 정의진 황종필 선수 등 5명이 무더기 중징계를 받은 강원도청 육상팀의 해체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배호원 육상연맹 회장의 퇴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삼성그룹 임원 출신으로 지난 2017년부터 육상연맹을 이끌었던 배 회장의 임기는 내년 1월이어서 ‘혹시 연임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대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번 사고로 ‘사퇴’ 쪽으로 확실하게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 육상계의 관측이다.
한국 육상은 트랙과 필드, 마라톤 가운데 유독 마라톤에서만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했다. 손기정, 서윤복, 함기용, 황영조, 이봉주 등 올림픽이나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가 바로 그들. 하지만 그 금맥(金脈)도 2001년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케냐의 10연패를 저지하며 우승한 뒤 끊기고 말았다. 1997년 1월 고 이건희 회장의 특별지시로 삼성이 육상연맹을 맡아 매년 15억 원 이상 지원하고 있으나 그동안 올림픽이나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4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23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43개 세부 종목 129개의 메달이 걸려있었으나 단 1개의 동메달조차 따지 못하는 수모를 겪더니 이번에는 마라톤 국가대표들이 음주운전에 교통사고 뺑소니 운전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우리 속담이 실감 나는 일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