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1952년 4월28일) 61주년을 맞은 28일 주권회복 기념식을 정부 주최로 처음 개최한 데 대해 일본 내부에서도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언론 사이에서는 강화조약 발효로 연합군의 점령 통치가 끝나 주권을 회복한 것을 그저 축하만 할 것이 아니라 점령 통치를 야기한 일본의 잘못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일왕 부부가 참석한 28일 주권회복 기념식 말미에 '천황폐하 만세' 삼창이 나오고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 등 3권 수장과 국회의원들이 만세삼창에 가세한 것과 관련해 미묘한 파문이 일고 있다.
이날 기념식은 오키나와(沖繩) 주민들이 자신들은 4월28일이 주권을 회복한 날이 아니라 일본 본토로부터 버림을 받은 `굴욕의 날'이라며 아베 정권의 기념식 개최 계획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강행됐다. 오키나와는 강화조약 발효 이후에도 계속 미국의 시정권하에 있다가 1972년이 돼서야 일본 본토로 반환됐다.
이와 함께 오키나와 주민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사민당 등 야당측은 찬반이 엇갈리고 논란이 일고 있는 기념식에 일왕 부부를 참석시킨 것은 일왕을 정치적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기념식 참석을 거부했다.
이처럼 오키나와 주민 등의 강력한 반발과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이 기념식 개최를 강행한 것은 개헌 정지 작업의 일환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개헌을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쟁점으로 전면에 내세울 작정인 아베 정권으로서는 개헌 분위기 띄우기의 포석으로 주권회복 기념식에 집착했다는 분석이다.
아사히신문은 29일자 사설에서 "4월28일을 이야기할 때 잊지 말아야할 관점은 왜 일본이 점령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느냐는 것"이라며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범한 끝에 패전을 맞이한 역사"라고 강조했다.
사설은 이어 일본이 1945년 종전 후 7년간의 연합군 점령기에 평화헌법을 제정하고, 군국주의와 결별하는 한편 민주국가로서의 재출발을 선언함으로써 국제사회 복귀가 인정됐다고 소개한 뒤 "그것을 잊은 채 점령기를 '굴욕의 역사'로 간주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꼬집었다.
그 맥락에서 사설은 최근 일본 국회의원 168명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집단 참배, 아베 총리의 '침략 물타기' 발언 등에 우려를 표했다.
사설은 "같은 패전국인 독일은 전국민적으로 과거사 정리 노력에 나섬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위치를 정립했다. 그 경험을 본받아 일본인도 점령이 끝난 4월28일과 전쟁이 끝난 8월15일을 통해 좌우 입장 차를 초월한 정리를 하자"는 자민당 소속 노다 다케시(野田毅) 중의원 의원의 발언을 소개했다.
요미우리신문 사설도 이날 "연합군 점령기의 역사가 국민들 사이에서 잊혀지고 있다"며 "주권을 상실하게 된 경위를 포함해 냉정하게 다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내외에 참화를 가져온 '쇼와(昭和·개전 당시 일왕인 히로히토 시대의 연호)의 전쟁'은 국제감각을 잃은 일본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됐고, 패전과 점령은 그 결말"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산케이신문은 사설격인 '주장'에서 '4·28 주권회복일' 제정을 계기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더 강화할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산케이는 "국가주권은 자국의 의지로 국민과 영토를 통치하는 것으로, 국가가 가진 절대적인 권리를 의미한다"며 "
이어 "북방영토(쿠릴 4개섬)는 러시아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한국에 각각 불법점거된 상태"라며 "북방영토와 다케시마가 반환되고 납북 피해자 전원이 일본으로 돌아올 때까지 진정한 주권회복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