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GDP)이 10만 달러에 달하는 부자나라 카타르가 다른 나라에 손을 벌리는 처지가 됐다.
유가가 수년째 곤두박질 치면서 곶간은 갈수록 비어만 가고 있는데,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에 엄청난 돈은 계속 써야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유가쇼크에도 끄떡없던 체력을 자랑하던 카타르마저 경제가 흔들리면서 걸프만 석유부국의 미래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및 걸프타임즈 등에 따르면 카타르 정부는 지난 2일 137억(약 16조 2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국채를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국제유가 추락에 따라 원유를 비롯해 카타르의 주요 수입원인 천연가스가격도 지난해 대비 ‘반토막’이 나자 해외에서 돈을 빌려 축난 재정을 채우겠다는 것이다.
셰이크 압둘라 빈 사우드 알 타니 카타르 중앙은행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의 이번 정책은 지역에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며 금리가 낮은 상황이어서 지금이 국채를 발행하는 적기”라고 말했다. 카타르는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원유와 천연가스 판매를 통해 거둬들인다. 그런데 최근 원유 값과 원가격에 연동하는 천연가스 가격이 작년 대비 50% 수준 폭락하자 재정수지가 급속히 악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카타르 정부는 올해초 배럴당 59.1달러 수준을 가정해 정부 지출 등 예산을 책정했다. 3일(현지시간) 뉴욕거래소에서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47.83달러. 가스 가격 역시 현재 1mm BTU당 2.644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절반 가까이 추락했다.
가격만 떨어진 게 아니다. 수출량 자체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중국발 쇼크로 제조업 열기가 식으면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카타르의 최대 원유·가스 수출국인 일본만 해도 올해 전반기 카타르로부터 수입한 원유·가스는 총 92억달러(약 11조원) 어치에 그치면서 전년대비 44% 줄어들었다.
매년 250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내며 ‘사우디보다 실속있다’는 평가를 받던 카타르 재정이 흔들리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 7월 카타르 무역수지는 143억 리얄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는 지난해 7월 대비 무려 55.6% 감소한 수치다.
지난달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지난 2007년 이후 8년 만에 연말까지 270억달러 규모의 국채 발행을 발표했다. 사우디도 재정수입의 90%를 원유 수입에 의존한다.
국제유가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셰일가스와 경쟁때문에 ‘감산 불가’를 외쳤던 원유 부국들의 도박이 줄줄이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석유수출기구(OPEC) 회원국이 한동안 잠잠했던 감산얘기를 다시 꺼낸 것만 봐도 사정이 급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 이어 산유국 경제마저 흔들리자 IMF도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중순 IMF는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의 정부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고 재정정책 변경과 다양한 수입원 발굴, 부가가치세(VAT) 및 토지세 도입 등을 통해 재정 수입을 늘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카타르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주택, 교육, 의료 등이 모두 공짜고 세금도 거의 안내 룩셈부르크에 이은 세계 최고 복지국가로 꼽힌다.
사우디도 카타르보다는 복지수준이 약하지만 노동자와 연금생활자 등에게 후한 보너스를 주고,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 격퇴를 위해 결성한 자국 주도의 걸프 지역 지상군 작전에도 막대한 비용을 지출, 재정이 갈수록 악화 중이다.
문제는 이들 중동 산유국들의 복지축소와 증세가 말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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