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일인자 자리를 노리던 공화당의 ‘넘버투’ 매카시가 ‘설화(舌禍)’로 무너졌다.
미 의회 차기 하원의장으로 유력했던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8일 기자들과 만나 “놀라지 마시라. 나는 그냥 원내대표로 남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원의장 경선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존 베이너 현 하원의장이 이달 말까지 일하고 사퇴하겠다고 밝히면서 매카시는 차기 하원의장으로 유력했었다. 공화당 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은 물론이고, 미국 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의 모델이 된 정치인으로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올해 50세인 매카시는 특히 지난 2006년 하원에 진출해 이번에 하원의장이 되면 미국 정치사에서 정계진출 후 최단기간에 의장이 되는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매카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방송에서 내뱉은 ‘벵가지 특위’ 발언이었다.
벵가지 특위는 2012년 9월 리비아 무장집단이 리비아 벵가지 소재 미 영사관을 공격해 대사를 포함한 미국인 4명이 숨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공화당 요구로 설치된 기구다. 표면적으로 중립적인 기구이지만 유력 대선주자인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을 흠집내기 위한 기구라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그런데 매카시가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들이 힐러리 클린턴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에게는 벵가지 특위가 있다”면서 “지금 클린턴 지지도가 어떤가. 떨어지고 있다.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이라며 벵가지 특위의 정치적 의도를 실토하고 말았다. 매카시는 곧바로 해명에 나섰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선거캠프는 물론 민주당 지도부 전체가 나서 벵가지 특위가 사실상 ‘힐러리 죽이기’를 위한 전위부대라고 비판하면서 특위 폐지를 요구했다. 클린턴 선거캠프는 국민 혈세가 투입된 벵가지 특위를 공화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광고도 내보냈다.
공화당 내에서도 매카시의 경솔한 발언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주자는 “민주당과 협상을 잘할 수 있는 강인하고 영리한 하원의장이 필요한데 매카시는 그런 자질이 없다”고 지적했다.
매카시의 경선포기 선언으로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일단 선거 일정을 연기했다. 현재까지 경선 참여의사를 밝힌 의원은 제이슨 샤페즈(유타), 대니얼 웹스터(플로리다) 의원이 전부다. 하지만 당내 지지기반이 두텁지 않은 인사들이어서 새로운 인물이 경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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