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저녁(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남동쪽으로 200여 미터 떨어진 윌슨 멜론 오디토리엄에 모처럼 꺼낸 정복을 차려입은 미군 용사들이 줄지어 입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열린 ‘한미 우호의 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행사가 시작되고 자줏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만찬사를 시작한 박 대통령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고락을 함께한 미국 인사들을 한명 한명 거론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박 대통령이 한 문장씩 연설하고 이 문장이 통역될 때마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박 대통령은 조부 때부터 3대에 걸쳐 우리나라를 돕고 있는 다이애나 두건 전 미국 국무부 대사를 언급하며 “이처럼 한국이 식민지에서 광복을 이뤄낼 때도 또 전쟁을 거쳐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과정에서도 미국은 한국의 가장 든든한 동맹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한국전에서 실종된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다가 올 2월 작고한 엘리엇 블랙스톤 여사가 남편이 실종된 낙동강에 자신의 유골을 뿌려달라고 한 사연을 거론해 참석자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블랙스톤 여사의 자녀가 참석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인사 중에는 ‘한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로버트 루니 제독과 조지 드레이크 박사도 있었다. 루니 제독은 흥남철수 당시 1만4000여명의 피난민을 구한 미국 상선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1등 항해사였다. 드레이크 박사는 한국전에 미 육군 정찰병으로 참전해 전쟁 중 보육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를 돌봤으며, 전후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20톤이 넘는 원조물자를 한국에 지원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이날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기념비에 헌화한 뒤 흥남철수 작전의 주역인 루니 제독과 에드워드 알몬드장관의 외손자인 토머스 퍼거슨 대령을 만나 “당신은 진정한 영웅(You are the true Hero)”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1976년 북한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희생된 아서 보니파스 대위의 미망인, 대한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힘썼던 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 박사의 손자, 이화여대 전신인 이화학당 설립자이자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외국인 여성 선교사인 메리 F.스크랜튼 여사의 증손녀, 1960∼80년대 한국에서 젊음을 바친 평화봉사단 대표 11명도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또 미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재미동포 사회를 언급하면서 김용 세계은행 총재, 성김 국무부 부차관보도 소개했다.
박 대통령은 이들을 향해 최근 미국 조야에서 일고 있는 ‘중국경사론’을 의식한 듯 “한국에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한·미간의 우정과 인연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만찬사에 앞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인사말에서 “한미동맹은 단순히 안보에 대한 지지나 물질적 이익관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면서 “한미 동맹은 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계속 반복되고 있는 오래된 발견에 기초해 있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또 “한국의 미국 학생과 미국의 한국 학생들이 서로 ‘카카오톡’으로 대화하
이날 행사에서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와 CBS소년소녀합창단의 합창 그리고 우리가락 청소년 무용단의 부채춤, K-타이거즈의 태권도 시범공연 등을 선보여 재미 한국인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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