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서 내려다 본 호주 북부 항구 도시 다윈의 모습 <이유섭 기자> |
‘진화론’ 저자 찰스 다윈의 이름을 딴 이 도시는 건국 후 100년 넘게 호주에게 있어 인구 15만명에 불과한 ‘아웃백(Outback·호주 내륙 사막의 넓고 인구가 적은 지역)’일 뿐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지난 1942년 일본군 폭격으로 처참히 파괴되고, 1974년 성탄절에는 초대형 사이클론을 맞은 비극적인 역사도 가지고 있다.
호주가 시드니·멜버른 등 남부를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하며 다윈의 존재는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제는 호주 내부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주요국의 관심이 집중되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6월 호주 정부는 ‘호주 북부지역 개발을 위한 백서(White Paper on Developing Northern Australia)’를 내놓았다. 북호주는 전체 6개주 가운데 위쪽에 위치한 노던테리토리, 퀸즐랜드,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등 3개주를 뜻한다. 백서는 3개주에 대한 △철도·댐 등 인프라스트럭처 건설 △농축산업 및 관광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 방안 등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전체 개발 계획 중심에 바로 노던테리토리의 주도(州都)인 다윈이 있다.
호주 정부는 다윈을 비롯한 북호주 지역 항구, 철도, 물 관련 시설, 파이프라인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50억 달러(약 6조원) 규모 차관을 개발업체에 제공하기로 했다. 또 원자재 공급 차원에서 다윈으로 통하는 북부 지역 고속도로 개선작업에 6억 달러를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앤드류 로브 무역투자 장관은 “다윈을 중심으로 한 북호주 지역은 호주 전체 영토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호주에 매장된 가스의 90%가 이곳에 있고, 호주에 내리는 비의 60%가 이곳에 내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호주는 열대 지역에 속한다”며 “2050년쯤에는 열대 지역에 사는 인구 비중이 전세계의 절반에 달할 것이라는 점도 이 지역이 갖는 잠재력”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9월 취임한 말콤 턴불 총리는 북호주 개발을 본인 최대 과업 중 하나로 정한듯한 내각 구성을 했다. 신설된 무역투자 장관에 한중일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진두지휘한 앤드류 로브를 앉힌 게 대표적이다. 북호주 전체를 관할하는 장관직도 새로 만들어 개발에 힘을 실어줬다.
그렇다면 호주 정부는 다윈을 포함한 북호주 개발에 왜이리 사활을 거는걸까. 중국 등 호주의 주요 원자재 수출국 경제가 둔화되면서, 석탄·철강·가스 같은 자원 외에 또다른 성장동력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올들어 중국이 호주로부터 수입하는 석탄과 철강 규모는 전년 대비 각각 30%, 25.7%씩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 호주 정부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과 수요는 언제든 다시 올라갈 수 있다”면서도 “수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 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호주가 차기 성장동력으로 택한 건 기업형 농축산업(Agribusiness) 이다. 북호주에만 쇠고기로 쓰일 수 있는 소가 1250만 마리 있다. 호주서 수출되는 생우(生牛)의 90%가 북호주산이다. 대하, 바라문디 같은 각종 해산물과 열대지방 과일과 채소 등도 대량 생산된다. 현재 노던테리토리 농축산업 경제 규모만 6억4000만 달러고 나머지 2개주를 합치면 20억 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 규모를 중장기적으로 10배 넘게 키운다는 게 호주 정부 계산이다.
호주는 향후 대량 생산될 호주산 식품의 최대 수요처로 폭증하는 아시아 중산층을 지목하고 있다.
백서에 따르면 2030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사는 중산층 수가 30억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들은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건강한 식재료를 찾을텐데, 여기에는 좋은 임지를 구축하고 있는 호주산이 제격이라는 게 호주 정부측 주장이다.
피터 스타일스 아시아 담당 장관은 “인도네시아만 봐도 현재 국민 1인당 2.2kg 수준인 연간 호주산 쇠고기 수입량을 20kg까지 늘려주길 희망하고 있다”며 “이같은 수요를 충족 시킬 수 있는 나라는 호주 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앞으로 호주가 아시아의 레스토랑 같은 역할을 하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중국, 일본에 이어 올해안에 인도와의 FTA를 마무리 지으려는 것도 충분한 식량자원 수요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북호주 개발 계획을 내놓은 뒤 호주 정부는 적극적으로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다.
지난 8일부터 사흘간 다윈 컨벤션센터에서 북호주투자포럼를 개최하고 중국투자공사(CIC), 인도 아다니그룹, 사우디농축산투자공사 등 아시아의 주요 큰 손들을 초청했다. 포럼에는 로브 장관과 조쉬 프라이던버그 북호주 장관은 물론이고 북부 3개주 장관들까지 총출동했다. 이들은 약 400명의 투자자들과 1대1 만남을 갖고 투어 가이드까지 자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같은 호주 정부 구상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베팅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기업인 랜드브릿지그룹은 최근 5억 달러를 주고 99년간의 다윈 항구 운영권을 따냈다. 지난해 다윈항을 통해 수출된 생우 수가 138만마리(전년 대비 22% 증가)에 달하는 점 등으로 미뤄봤을 때, 향후 수익성과 성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중국의 대형 부동산회사인 상하이중푸그룹은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오드강(길이 320km) 주변 토지에 대한 임대·개발권을 7억 달러를 주고 확보하기도 했다.
다윈에서 만난 중국인 투자자는 “좋은 땅은 이미 모두 팔렸지만,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사둘 생각”이라며 “호주산 쇠고기 수입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호주 정부가 야심하게 추진하는 북호주 개발계획이 현실화 되기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있다. 우선 물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북호주에는 연 200만 갤러 안팎의 비가 우기(11~3월)에만 내리는데, 이것이 농업용수 등으로 활용되는 비중은 한자릿수가 불과하다. 댐을 지어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호주 의회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러 환경단체를 설득해야 한다.
최근 8년 새 총리가 4번이나 바뀔 정도로 불안정한 정치 리스크도 있다. 현 집권당인 자유당이 6년 만에 간신히 되찾은 정
시드니·멜버른 등 호주 남부 시민들의 불만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가뜩이나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10%→15%) 가능성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북호주 개발자금이 자칫 자기네 호주머니에서만 빠져나갈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다윈(오스트레일리아) =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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