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214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원유·가스 프로젝트에 대한 해외투자 유치에 나섰다. 핵협상 타결로 이란이 내년부터 경제제재 해제를 앞둔 가운데 적극적인 서방자본 유치를 통해 5년뒤엔 지금의 2배까지 원유생산 능력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란의 본격적인 원유시장 복귀로 유가 ‘치킨게임’이 가속화되면서 한국·일본 등 비산유국들에겐 혜택이 기대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기존 산유국과 에너지기업들의 한숨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로이터통신·파이낸셜타임즈(FT) 등은 29일(현지시간) 이란 정부가 전날 수도 테헤란에서 투자유치 컨퍼런스를 열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자국내 50개 원유·천연가스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오는 2020년까지 개발 예정인 프로젝트들로 투자액으로 환산하면 총 1850억달러(한화 214조원)에 달한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영국 BP, 프랑스 토탈, 노르웨이 스타토일, 중국 시노펙 등 무려 135개에 달하는 글로벌 메이저들이 대거 참가해 새롭게 부상한 원유생산국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비잔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투자자들에게 “첫 단계로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250억달러(약 28조9000억원)를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란이 유전 개발을 위해 해외자본 유치에 나선 것은 1570억 배럴 규모의 막대한 매장량(전세계 원유매장의 10%)을 갖고 있지만 그동안 서방 경제제재로 신생 유전 개발이 더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7월 서방과 핵협상 타결로 내년 초부터 경제제재 해제를 앞두고 이란 정부로선 본격적인 투자 유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2012년만 해도 이란의 원유생산능력은 일 370만 배럴에서 경제제재가 발효된 직후 270만 배럴로 크게 줄었다. 이란은 경제제재가 풀리는 즉시 최소 일 50만 배럴을 추가 생산할 예정이다. 아울러 투자 유치가 성공하면 이란은 5년후인 2020년까지 원유생산능력은 일 500만배럴에 달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이란은 하루 1000만배럴 안팎을 생산하면서 미국과 사우디에 이어 세계 3위 산유국 자리를 굳히게 된다.
현재 이란은 저렴한 인건비 등으로 배럴당 원유생산 비용이 10달러에 불과해 사우디를 비롯한 다른 산유국들에 비해 매력적인 투자처로 꼽힌다. 특히 공격적인 투자 유치를 위해 이란 정부는 통상 15~20년인 유전개발 계약기간을 최대 25년까지 늘리는 등 투자자에 우호적인 내용의 계약조건을 담은 ‘통합석유계약’(IPC) 방식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초기 생산비용을 보전할 수 있어 거액을 투자하는데 유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외국 기업들은 현지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기술이전 등을 조건으로 투자에 참여할 수도 있다. 단 외국 기업이 단독으로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국영이란석유회사(NIOC) 등 현지 기업과 공동 투자해야 한다.
알리 카르도르 NIOC 투자 및 자금조달 부문 부책임자는 내년 3~4월에 첫 계약이 서명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원유매장량 기준 세계 4위인 이란이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해 생산 확대에 나서면서 전세계 유가에 대한 장기적인 하락 압력은 커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여기에다 오는 4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석유장관회의에서 베네수엘라, 알제리, 앙골라 등 유가 급락에 재정압박이 심한 국가들이 사우디에 감산을 요구할 예정이지만 사우디가 이를 수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우디 역시 유가 하락으로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감산 대신 비(非) OPEC 회원국을 유가 ‘치킨게임’으로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전략으로 입장을 굳혔기 때문이다. 특히 섣불리 감산에 합의했다가 경제·외교적으로 적대관계인 이란에게 되레 시장만 빼앗기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까 사우디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요인들 때문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선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율로지어 델 피노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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