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자행된 파리 테러참사후 프랑스와 지난 2일 LA동부 샌버나디노 총기테러후 미국의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확연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5명이 사망한 테러 현장이었던 파리 11구 라본비에르 카페가 재개장하고 테러 당시 바탕클랑 극장에서 공연했던 록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이 7일 파리에서 공연을 재개하는 등 파리지엥들은 일상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반면 미국 본토 테러공포 확산 불안감속에 이슬람포비아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공화당 대선 유력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 전면 미국 입국금지”라는 증오섞인 막말을 내뱉는 등 갈등과 분열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참다 못한’ 백악관이 먼저 트럼프를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조쉬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8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선거개입 논란 우려를 무릅쓰고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며 “만일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되더라도 공화당 지도부는 이를 거부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막말’에 침묵해온 공화당 지도부까지 비판에 가세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트럼프의 발언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공화당은 물론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증오를 조장하는 트럼프 주장에 대해 전세계에서 비난이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트럼프 발언은 협력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은 “트럼프 보기 싫어서 뉴욕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새라 울러스턴 영국 보수당 의원과 잭 드로미 노동당 의원은 “트럼프의 영국 입국금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트위터에 “증오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트럼프는 누군가(테러리스트를 지칭)와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캐나다에서도 톰 멀케어 신민주당 대표가 “증오를 부추기는 트럼프를 캐나다에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타워, 트럼프호텔 등 ‘트럼프’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도 넘쳐나고 있다.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은 트위터에 “볼드모트도 트럼프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했다. 볼드모트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의 화신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이집트 종교부는 성명을 통해 ‘800만 무슬림이 사는 미국 사회에 긴장과 적대감을 조장하는 혐오 발언’이라고 비판했고 파키스탄의 유명 인권 변호사 아스마 자한기르는 “우리가 미국처럼 발전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런 사람을 절대 선거로 뽑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중동 부호들은 아예 트럼프와의 사업 거래 단절을 선언했다. 두바이 사업가인 칼라프 알 합투르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종교에 대한 모욕을 용납할 수 없다”며 “트럼프와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기업인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아랍에미리트(UAE) 실내장식품 기업인 라이프스타일은 트럼프 회사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트럼프는 터키, 아제르바이젠 등 이슬람 국가에서 호텔, 골프장, 건물임대, 부동산개발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비난에도 트럼프는 “개의치 않겠다.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며 오기를 부리고 있다. 트럼프는 “(무슬림을 막지 않으면) 더 많은 9·11이 발생할 것”이라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항변했다. 심지어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41년 일본군 진주만 공습 직후 11만여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격리한 것을 거론하며 “루스벨트가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물러서지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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