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글로벌 컨설팅그룹인 액센츄어의 전세계 고위 경영진 500여명이 시카고 근교의 한 호텔에 전략회의를 위해 모였다. 당시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피에르 낭텀은 당시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그러나 회의가 시작된 지 10분 만에 놀라운 풍경이 벌어졌다. 낭텀CEO가 회의장에 갑자기 ‘깜짝’ 등장한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갑자기 날아온 게 아니다. 낭텀CEO는 일종의 3D 가상현실기술인 ‘홀로그램’을 통해 회의장에 깜짝 등장했다. 곧 이어 뉴욕 인사본부에 있는 엘린 슈크 인사본부장도 무대에 같이 나타났다. 둘은 최근 회사의 인수합병(M&A) 전략에 대해서 설명하고 경영실적과 전망도 회의참석자 앞에서 설명했다. 직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실시간으로 응답했다.
회의의 끝은 홀로그램이 회의진행자들과 주먹을 쥐고 서로 부딪히며 일종의 ‘하이파이브’ 세레모니를 하면서 마무리했다.
깜짝쇼와 같은 액센츄어의 ‘홀로그램 회의’는 지난 77년 개봉됐던 헐리우드 공상과학영화 ‘스타워즈’를 통해 상상속 기술로 첫선을 보였다.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크에게 리아공주가 로봇 R2D2의 홀로그램을 통해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고 제국군의 ‘다크시스’ 황제는 악의화신 다스베이더에게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
홀로그램이 기존 동영상이나 3D기술과 틀린 것은 허공에서 영상을 3D로 재현하는 것이다.
레이저에서 나온 광선을 2개로 나눠 하나의 빛은 직접 스크린을 비추게 하고, 다른 하나의 빛은 우리가 보려고 하는 물체에 비춰 두개의 레이저광이 만나 일으키는 간섭효과를 이용해 스크린에서 떨어진 허공에 영상을 입체적으로 나타나게 만든다.
실생활으로 들어온 홀로그램 기술은 이제 미국의 기업들 사이에서 업무의 공간적 제약을 파괴하고 협업시스템을 혁신하는 ‘스마트워크’ 기술로 응용되기 시작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액센츄어는 이같은 홀로그램 회의를 전사적 업무에 적용하기 위해 이미 프랑스 파리, 미국 시카고를 비롯해 전세계 7개 국가에 홀로그램영상을 실시간 중개하는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낭텀CEO는 “전세계의 지사·법인들에게 내 생각과 전략을 전하기위해선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다”며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내 몸을 움직이는 대신 이제 생각만 움직이면 될수 있는 단계가 됐다”고 말했다.
홀로그램 회의 실험은 사실 액센츄어가 처음이 아니다. 미국의 네트워크IT회사 시스코는 몇년 전 인도에서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2명의 임원들이 당시 존 체임버스 CEO와 토론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지난 해엔 물리학자 스티븐호킹이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홀로그램을 이용해 강의를 하기도 했다.
컨설팅 회사인 액센츄어가 이 같은 홀로그램을 이용한 스마트 회의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배경이 있다. 액센추어는 공식적으로 본사가 없다. 낭텀CEO는 기본적으로 파리에 있지만 재무본부는 미국 애틀란타에 있고 경영지원본부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다. 다른 주요 경영진 사무실도 싱가폴과 인도 방가로르에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120개국에 6000명의 간부들과 매일 업무협조가 필요할 정도다.
낭텀CEO는 공식적으로 대규모 인원들이 모이는 회의를 금지한 상황이다. 그러나 화면을 통한 영상통화회의만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WP는 “올해 출시되는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가상현실기기나 마이크로소프의 홀로렌즈 헤드셋 등이 가상현실기술을 새로운 적용의 단계로 올려 놓을 것”이라며 “사무실과 협업의 공간적 제약이 사라지는 ‘스마트워트’ 시대가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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