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거론해온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이 확실시되면서 동맹국들이 주둔 방위비를 100% 부담해야 한다고 압박수위를 높였다. 테드 크루즈 후보의 경선레이스 포기 발표에 이어 4일(현지시간) 존 케이식 후보마저 경선 중단을 선언하면서 트럼프의 후보 지명이 사실상 확정되자 자신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밀어부친 것이다.
이날 CNN 방송 인터뷰에 나선 트럼프는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52%를 부담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100%는 왜 안되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한국 일본 독일 등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들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우리가 그들을 방어해주고 있는데 그 비용을 왜 우리가 내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관련해 거듭 방위비 부담을 강조해왔는데 그 범주에 한국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도 재차 거론했다. 그는 “만약에 (미군 주둔 비용을) 부담하기 싫다면 결과는 간단하다. 스스로 방어하면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같은 외교·안보 관점은 본선 경쟁자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트럼프가 미군 주둔과 관련한 비용분담을 주장하며 비즈니스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반면 힐러리는 동맹국과의 공조와 파트너십에 무게를 두고 있다. 힐러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은 동맹국 방어에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핵 비확산체제에 대해서도 트럼프와 힐러리의 시각 차는 확연하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이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경우 핵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다고 한 반면 힐러리는 핵무기 개발이 진전되지 않도록 비확산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힐러리는 버락 오바마 정부 초대 국무장관을 지내며 ‘핵무기 없는 세상’을 강조해왔으며 힐러리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측근인 웬디 셔먼 전 국무차관도 최근 강연에서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 핵무장에 나서는 시나리오는 상당히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트럼프는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유럽·아시아 동맹들과 방위비 재협상을 벌이고 적정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는 동맹에 대해서는 주둔 미군을 철수하거나 ‘핵우산’ 제공을 거둬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핵우산을 철회할 경우 해당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도 두 후보 간에 차이가 크다.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방법론에서는 공통분모가 있다. 하지만 힐러리는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고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사고다. 반면 트럼프는 북한과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며 중국을 통해 북한을 고립시켜 미국을 위협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계산이다.
힐러리는 “북한이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완전히 핵무기를 제거하는 경우 경제적·인도적 지원과 함께 관계 정상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무장관 시절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이어가는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비서를 수시로 ‘미치광이’라고 언급해왔으며 “중국만이 미치광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동맹국과 교역을 바라보는 힐러리와 트럼프의 시각 차이 역시 크다. 힐러리는 기본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긍정적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는 당초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는 국익에
하지만 트럼프는 자유무역 기조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으며 한·미 FTA에 대해서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키우는 불합리한 협정이라고 여기고 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