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 진압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모든 국가기관에서 바이러스를 박멸하겠다”며 쿠데타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을 다짐하고 나섰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그렇지 않아도 철권통치를 강화하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를 빌미로 노골적인 정적 숙청과 독재강화에 나설수 있다는 점을 경계, 법치에 따른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이스탄불 파티흐 모스크에서 엄수된 쿠데타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 “암세포처럼 바이러스가 국가를 뒤덮고 있다”며 “모든 국가기관에서 바이러스 박멸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쿠데타 진압을 신호탄으로 반대세력에 대한 숙청에 나설 뜻을 확실히 한 셈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시도가 끝나기도 전에 “쿠데타는 군을 청소할 명분을 주는 것으로 신이 우리에게 내리는 선물”이라고까지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형제 부활 가능성을 거론, ‘피의 보복’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실제로 수도 앙카라에서 “쿠데타 주모자들을 교수형에 처하라”고 요구하는 집회가 열린데 이날 장례식장에 모인 군중들을 비롯해 에르도안 지지자들은 쿠데타 지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터키는 유럽연합(EU)가입을 위해 지난 2004년 사형제를 폐지한 바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진압직후 6000명에 달하는 군인들과 법조인을 체포한데 이어 경찰과 측근마저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터키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17일 현재 터키정부는 군인 2839명, 알파르슬란 알탄 헌법재판관을 비롯해 판·검사 2745명을 에르도안의 정적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에 동조한 혐의로 체포했다. 또 터키 관영 앙카라 통신은 앙카라에서 149명의 경찰이 쿠데타와 연루된 혐의으로 구금됐다고 전했다. 에르도안의 측근도 숙청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 파이낸셜타임즈는 “16일 밤 에르도안 부관인 알리 야지치(Ali Yazici) 대령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군인과 판·검사들을 대거 체포한 데 이어 경찰과 자신의 측근마저 숙청하면서 쿠데타 실패가 에르도안 독재를 더욱 강화시켜 주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와관련해 EU 외무장관들은 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담을 열고 쿠데타 진압후 ‘피의 보복’을 예고한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 정권에 법과 인권 존중을 촉구했다.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슬람주의에 경도된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터키를 신뢰할 수 있는 동맹으로 간주해도 될 것인 지에 의문이 든다”며 “EU가 쿠데타 세력이 아닌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것이 (정척 숙청을 허용하는)백지 수표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독일 집권 기독민주당 소속 귄터 외팅거 EU 집행위원은 “터키가 인권 탄압을 계속한다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이라며 “우리는 엄격한 법의 잣대와 가치에 따라 협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의 세바스티안 쿠르츠 외무장관도 독일 DPA 통신과 인터뷰에서 “EU 외무장관 회담에서 유럽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어디가 한계인지를 명확히 제시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난민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터키를 달래기 위해 EU 정상들은 쿠데타 직후 일제히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지만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과 언론 탄압 등 반민주적 행태를 일삼아온 그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로이터통신은 “많은 EU 정상들이 난민 차단이라는 목표때문에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권·민주화 문제 등으로 소원해진 미·터키 관계도 이번 쿠데타 후폭풍으로 더 틀어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후 철권통치를 강화하려는 움
터키 당국에 따르면 이번 쿠데타와 관련해 17일 현재 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는 총 294명으로 늘어났다.
[노현 기자 / 강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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