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탈출 난민 女, IS 실체 파헤치는 기자로
↑ 사진=연합뉴스 |
2013년 8월, 고향인 시리아 라타키아에서 생일을 보내려던 누어 사이드(27·여)씨는 대신 내전이라는 비극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정부군과 반군 간 충돌로 주민 200여명이 그의 눈앞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던 사이드씨는 자국민들을 돕고자 나름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시리아에서는 내전으로 시민들의 안전이 계속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개인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안전한 장소를 사람들에게 알려줬습니다.
16일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만난 사이드씨는 "그 활동을 오래 하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신변 위협이 계속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그는 결국 모국을 떠나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가족 도움을 받아 일단 터키로 몸을 피한 사이드씨는 이후 지중해를 건너 스웨덴에 도착했습니다. 통상 난민 캠프에 2년간 머물러야 하지만, 일하고 싶은 마음이 워낙 강했던 그는 오래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5개월도 채 되기 전 기본적인 스웨덴어를 익혔고, 스웨덴 최대 일간지 아프톤블라뎃에 입사했습니다.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린 그는 스웨덴 공영방송 SVT 기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민감한 사안을 다룬 탓에 사이드씨는 취재 내용을 자세히 밝히기는 꺼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에서 고대 유물을 빼돌려 유럽에 내다 팔아 자금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난민으로서 그는 훨씬 참혹한 모습도 목격했다. 시리아 난민을 밀입국시키는 업자들이 난민들을 살해하고서 그들의 장기를 적출해 팔아넘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이드씨는 그런 이들을 두고 "IS보다 더 위험한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업 부담을 호소하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사이드씨는 "나는 엄마가 여기 계시면서 아침에 날 깨워주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사는 대신 그런 부담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이드씨는 쌍둥이 여동생만 데리고 시리아를 탈출했습니다. 나머지 가족은 시리아에 남아 있다. 어렵사리 연락은 닿는 상황이라고
사이드씨는 한국 정부가 난민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모든 사람의 존엄을 주장합니다. 한국이 부유한 국가로서 이 문제에 더 뛰어들어 줬으면 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난민을 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특히 스웨덴과 독일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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