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뉴워크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뉴워크항. 5800여개의 컨테이너를 실은 6000TEU급(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한진마이애미호’가 애처롭게 떠 있는 이곳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진해운 컨테이너선은 미국 동부지역 해상운송의 주요 거점인 뉴워크항을 불과 한달 전만해도 내집 드나들듯 했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화주들의 빗발치는 성화에 한시라도 빨리 하역 작업을 개시하려는 한진해운은 현지 하역업체 노조의 반발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지난달 말 법정관리에 돌입한 한진해운은 현금으로 지불할 한진마이애미호 하역료를 넘겨받아 미국 하역업체에 제시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노조 측이 ‘과거 밀린 하역료를 전부 갚아야 화물을 내릴 수 있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로스앤젤레스(LA) 롱비치터미널에 정박한 한진 선박은 삼성·LG 등 한국 수출기업들의 비중이 큰 반면 뉴워크항으로 들어오는 배에는 미국 화주들의 화물 비중이 훨씬 높다. 이 때문에 하역 작업이 속절없이 지연될 경우 미국 화주들의 불만과 줄소송이 터져나올 위험성이 더 크다는게 해운업체들의 우려섞인 관측이다.
걸림돌은 하역료 문제만이 아니다. 한진이 정상 영업중이라면 뉴워크항 메이허 터미널에 화물 컨테이너를 내린 뒤 미국 수출기업들의 화물과 빈 컨테이너를 다시 싣고 빠져나오게 되는데 신규 운송주문이 뚝 끊겨 다시 옮겨 실을 컨테이너가 거의 없다. 뉴워크항 관계자는 “배에 짐이 가득 있으면 배가 착 가라앉은 상태여서 ‘베이원 브리지’를 무리없이 통과할 수 있지만 빈 배는 물 위로 뜨게 돼 이 다리를 통과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빈 컨테이너를 억지로 배에 싣고 뉴워크항을 빠져 나가는 방안을 다른 선사와 긴급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워크항에 정박중인 한진마이애미호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곳에 도착해야 할 선박 2척 중 1척은 파나마에 억류돼 있다. 파나마는 ‘선박 압류금지 요청’(스테이오더)을 승인하지 않는 나라에 속한다. 선박 억류 사유는 유류비 체불인 것으로 파악된다. 해운업체 고위 인사는 “화물 운송 지연에 따른 미국 화주들의 피해가 확산되면 소송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 있다”며 “현재로선 한진 오너일가들이 긴급 운영자금을 더 내놔야 운송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령 한진해운 선박의 컨테이너를 터미널에 하역하는데 성공해도 ‘산넘어 산’이다. 트럭업체나 컨테이너 섀시업체들이 한진 컨테이너 운송을 좀처럼 떠안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육상운송 비용이 껑충 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트럭업체 관계자는 “화주에게 화물을 넘겨준 뒤 비게 되는 컨테이너를 반납할 데가 마땅치 않으면 트럭업체들이 한진 화물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며 “한시적으로 쌓아둘 수 있는 컨테이너 야적장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진 로고가 박힌 컨테이너를 너도 나도 받아주지 않으면 보관료는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다. 이미 한진 컨테이너의 보관료가 10배에서 최고 100배까지 치솟았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한진 컨테이너가 처치 곤란의 흉물로 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빈 컨테이너를 맡겨둘 데가 없어 화물 인도가 끝나고 나면 아무데나 버려지는 ‘쓰레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한진뿐 아니라 한국의 이미지까지 타격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악재다.
해운업체 관계자는 “급한대로 현대상선이 한진 컨테이너를 수거해 활용하는 쪽으로 물꼬를 틀 수 있다”며 “한진 사태 여파로 물동량이 늘어날 수 있다면 어차피 추가 컨테이너가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의 유력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터저널은 한진해운이 보유 중인 컨테이너선 37척 중 15척만 남기고 22척을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한 용선 61척 대부분을 해당 선사에 돌려주는 구조조정을 벌이면서 중소 해운사로 전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진해운은 세계 해상 물동량의 3% 가량을 운송했고 하루 평균 2만5000개의 컨테이너를 실어 날랐다.
법정관리 전에 141척이던 한진해운의 운영 선박 수가 124척으로 감소하면서 해운업계 순위(컨테이너선 기준)는 7위에서 10위권으로 내려간 것으로 파악됐다. 막힌 물류의 흐름을 뚫기 위해 한진해운이 자체 보유 선박을 팔고 빌린 선박을 속속 반납하는 자구 노력이 이어질 전망이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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