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가 전세계를 휩쓸면서 이탈리아에서는 마피아(기업형 범죄·조직폭력배)들이 지역 사회 붙들기에 나섰다. 취약한 정부와 빈약한 공공재정의 빈틈을 노려 '대부'를 자처하면서 주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돈을 꿔주는 대신 이들의 신뢰를 사들이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부채 위기를 겪은 이탈리아는 경제 침체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유럽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3월 중국과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 중심의 경제협력) 협약을 맺었지만 1년 만인 올해 3월 중국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사상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과 아풀리아 등 남부 지역에서는 마피아 조직원들이 코로나19를 이용해 민심잡기에 나섰다고 11일(현지시간) BBC문도가 전했다. BBC문도와 익명 혹은 가명을 빌어 진행된 인터뷰에 등장한 마르셀로씨는 시칠리아 섬 팔레르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이다. 마르셀로씨는 "하루 종일 가게에 앉아 마피아 조직원들이 닫힌 문을 두드려주기를 기다린다"면서 "그들이 주문하고 내가 가격을 말하면 누군가가 계좌로 돈을 이체하거나 현금을 주고 음식을 사간다"고 말했다. 정부 지침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3월 부터 식당 문을 닫았지만 비공식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르셀로 씨는 "나는 다시는 가게 문을 열 수 없을 것 같다"면서 "마피아들의 주문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코로나19 피해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대출 지원'에까지 손길을 뻗쳤다. BBC 문도는 코로나19가 마피아에게는 대출 사업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소규모 영세 사업자들에게 최대 2만5000유로를 대출 지원해주겠다고 나섰지만 이를 달갑지 않은 제안으로 보는 시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셀로씨는 "정부 대출을 받아도 갚을 능력이 없다"면서 "정부 지원을 받으면 사회적 거리를 지키는 식으로 규제에 따라야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빚 갚을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마피아를 상대로 장사 하면서 현금을 빌리는 식이 낫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사금융 대출 사업은 마피아 주요 사업이다.
이탈리아 마피아도 멕시코 마약 카르텔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정의로운 로빈 후드 이미지를 노린다. 인터뷰에 나선 '코사 노스트라' 조직원은 "사람들이 나에게 전화해서 울며 먹을 것을 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한다. 애가 다섯 딸린 젊은 여성이 매일같이 도와달라고 전화를 걸어오는 식이다"라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마피아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코사 노스트라는 시칠리아 섬의 악명높은 마피아를 따로 부르는 말이다. 또다른 마피아 조직원이었던 가스파르 무토로씨는 "나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매력적인 존재였다"면서도 "하지만 사람을 20명 이상 죽인 범죄자라는 진짜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피아들은 처음에는 아주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다가 점차 강압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해온다. 무토로 씨는 "마피아는 돈이 아주 많으며 그들은 누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마피아가 국가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지원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피아들의 도움은 전부 어떤 식으로든 돌려받아야 하는 호의"라면서 "그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그 호의를 되받으러 찾아온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남부 칸탄차로 지역의 마피아 범죄 당당 니콜라 그라테리 지방검찰총장은 "마피아의 작은 도움을 받은 대가는 고통이며, 그 고통은 천천히 다가온다"면서 "마피아들은 구세주처럼 보여도 결국은 추악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인수해 돈을 세탁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움받은 대가로 삶의 터를 빼앗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마피아에 빚진 주민들은 선거 때 '매표 행위'에 동원되기도 한다. 무토로씨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전에 내가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가서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죠? 당신 도와줬던 사람. 이번에는 내가 당신 도움이 필요한데, 이 후보에 투표하시죠'라고 말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마피아에 의해 특정 정치인에 대한 투표를 강요당하는 행위는 이른바 '교환 투표'(voto di scambio)라는 명칭으로 흔히 통하고 있다.
국가의 빈틈을 노린 마피아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지역 사회 포획이다. 그라테리 검찰총장은 "마피아는 자기들이 국가의 대안인 것처럼 등극한 후 지역 주민의 믿음과 협조를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 코로나19지원센터의 아틸리오 시메오네씨는 "마피아는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주민들을 제대로 도울 수 없다면 주민들은 결국 자기들의 상황을 잘 아는 마피아의 손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탈리아는 코로나19피해와 더불어 경제 위기가 나날이 커지면서 정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12일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총 21만9814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3만739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지난 3월 10일부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 봉쇄령'에 들어갔고 이로 인해 경제·사회 활동이 불가피하게 마비됐다. 이후 피해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정부가 지난 4일부터 제조업 등 경제활동을 조건부 정상화하고 이동 제한을 일부 완화하기 시작했지만 워낙 코로나19 타격이 큰 탓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탈리아 경제가 -9.1%역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8일 신용평가기관인 DBRS 모닝스타는 이탈리아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현재로선 무디스 등 주요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이탈리아 신용등급을 하향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이 나날이 오르고 있다. 12일 오전 9시51분 기준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885%로, 마이너스 상태인 독일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0.52%)에 비해 월등히 높다. 국채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해당 국채 가격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이 해당 국채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다.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은 이탈리아 정부는 경제 위기를 벗어나고자 유럽연합(EU)을 향해 재정 지원 요청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가시밭길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EU가 전례없는 경기 부양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앞서 독일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재정 사정이 비교적 탄탄한 북유럽 국가들이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에 대해 '공공 부채가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협조를 꺼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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