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를 대중 패권전쟁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략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그간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에서 "화웨이 제품을 쓰지 말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미온적이었던 유럽 동맹국들이 속속 화웨이 제품을 배재하고 삼성전자와 에릭슨 등 비중국 제품을 도입하고 있는 것. '팬데믹 중국 책임론'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된 정치 프레임이 글로벌 반(反)화웨이 연대 구축에 탄력을 더하는 흐름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전까지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反화웨이 연대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해왔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인 '스토커'처럼 유럽 동맹국을 상대로 "중국 화웨이 제품을 써서는 안 된다"고 압박해왔다.
심지어 미국 내 5G망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하기 위해 미 정부가 나서서 노키아와 에릭슨 등 유럽 통신업체 지분을 사들이는 시나리오까지 흘러나왔다.
실제 윌리엄 바 미국 법무 장관은 올초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콘퍼런스에서 "우리의 큰 시장과 자금력을 노키아와 에릭슨 중 한 곳이나 모두에 투입하면 훨씬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화웨이에 대한 우려를 없앨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유럽 주요 동맹국은 물론 핵심 정보·안보 연대인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마저 미국의 반화웨이 동참 요구에 머뭇거려왔다.
영국은 작년 말 화웨이의 자국시장 접근권을 허용키로 결정했고, 비슷한 시점에서 유럽연합(EU)도 중국 업체를 배제하지 않는 내용의 5G 네트워크 권고안을 확정했다.
유럽 동맹국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反화웨이 연대를 거부하는 이유는 실제 화웨이의 스파이 행위가 현실 세계에서 입증된 사례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反화웨이 운동을 연말 자신의 재선에 유리하게 활용하려 한다는 의심의 시선도 상당했다.
그런데 팬데믹 발발 후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은 지난달 자사 핵심 인프라에서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의 장비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존에 구축한 화웨이 제품을 모두 걷어내고 에릭슨 장비로 LTE 및 5G 서비스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도 최근 최대 이동통신사업자인 스파크가 화웨이가 아닌 한국의 삼성전자 5G 장비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웃국 호주는 미국의 反화웨이 연대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한 국가로, 최근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옵서버 자격 부여에 대해서도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밝혔다.
호주는 또 코로나19 발발 기원에 대한 국제조사를 추진하는 방안에 대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직접 나서서 지지 의사를 밝혀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공교롭게도 이후 중국은 호주 대형 육류업체 4곳의 대중 소고기 수출을 불허했다. 이들 4곳의 수출 물량은 호주 전체 대중국 수출 물량의 35%에 이른다.
또 동시다발적으로 호주산 보리에 덤핑혐의를 적용해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2016년 한국의 사드((T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구축 이후 중국이 노골적 경제보복 조치를 가했던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한편 자사가 아닌 에릭슨 제품을 쓴 영국 브리티시텔레콤의 최근 결정에 화웨이는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화웨이 본사는 브리티시텔레콤의 '배신' 열흘 뒤 영국 화웨이 법인의 사외이
레이크 전 회장은 10년 넘게 브리티시텔레콤 회장을 역임한 영국 재계의 거물이다. 통신업계는 "중국이 재계에 영향력이 큰 인사를 소방수로 투입해 영국 내 反화웨이 불길을 잡으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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