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 팬데믹(COVID-19 대유행)으로 전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선 가운데 맥주 시장도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풀기 위해 여럿이 '펍'(pub)에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는 것이 저녁 풍경이었지만 미국과 유럽에선 코로나19 탓에 펍이 줄줄이 영업을 일시 중단하면서 주로 펍에 수제 맥주를 납품하던 소규모 브루어리(양조업체)들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펍술족'이 많은 유럽과 달리 '홈술족'이 많은 미국에선 한동안 주춤하던 대형 업체 맥주 판매가 늘어나 눈길을 끌고 있다.
우선 미국에서는 '멍멍이 배달원'이 등장했다.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 해안가 헌팅턴에서 식스하버스브루잉컴퍼니를 창업해 운영 중인 마크 휴웨터씨는 최근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 버디와 바리에게 맥주 딜리버리(배송) 서비스를 맡기고 있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전 브루어리에 딸린 간이 펍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던 버디는 세 살이고 바리는 한 살인데, 요즘 부쩍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사회연결망(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CNBC가 전했다. 수제 맥주를 주문한 손님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미리 집 근처 약속 장소로 가면 휴웨터씨 차를 타고 온 버디와 바리가 차에 내려서 수제 맥주를 가져다 주는 식이다. 딜리버리 인증샷도 찍는다.
휴웨터씨는 23일 CNBC 메이크잇 인터뷰에서 "리트리버들이 (방문객이 잘 찾아오지 않는)브루어리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딜리버리를 따라나서고 싶어해 아이디어를 내게됐다"면서 "지금은 수제 맥주 판매가 쉽지 않아 색다른 아이디어를 내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휴웨터씨는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여파로 고용 유지를 위한 급여보호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PPP) 상 정부 대출 지원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4~5월은 수제 맥주가 잘 팔리는 성수기에 해당하지만 일단 4월만 보면 1년 전보다 판매량이 70~80%줄어들었다"면서 "다행히 딜리버리 영업이나 길가 픽업서비스를 할 수 있어 브루어리가 일부 가동은 되지만 애초에 이런 부분은 사업 비중이 크지 않았다"고 걱정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미국에서 본격화된 지난 3월, 뉴욕 주는 브루어리를 '필수 사업'으로 분류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조건으로 했다.
방역을 위해 필요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소규모 브루어리가 수제 맥주를 주로 납품하는 펍이나 바, 식당이 영업을 중단하면서 매출 급감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미국 맥주양조업협회에 따르면 조사 기간을 포함한 최근 4주 간 미국 내 소규모 브루어리가 생산한 수제 맥주 판매는 평균적으로 70%줄어들었다. 이들 업체 중 11.8%는 1~4주 내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미국 내 소규모 브루어리는 현금 보유량이 펍이나 바, 식당 납품 외에 소매·도매 판매를 거의 하지 않기 않기 때문에 타격이 크다.
협회 조사는 지난 4월 9일, 워싱턴DC가 있는 컬럼비아 특별구와 49개 주 소재 소규모 브루어리를 대상으로 이뤄졌고 525개 업체가 응답했다. 협회에 따르면 미국 내 브루어리 75%가 1년에 맥주 1000배럴 정도를 생산하는 일반 업체이고, 중간 규모 수제 맥주 브루어리인 경우는 400배럴을 생산한다. 이보다 더 적은 양을 생산하는 경우를 통상적으로 소규모라고 본다.
반면 대형 브루어리들이 만든 맥주는 간만에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라이트 맥주'는 코로나19사태 기간 동안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진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8일 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바깥 나들이가 힘들어지자 사람들이 월마트 등 대형 마트에 가서 여러 묶음 단위 캔 맥주를 한꺼번에 살 수 있는데다 사람들이 '라이트 맥주'가 일반 맥주보다 좀더 건강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라이트 맥주를 많이 사들인다는 분석이다.
WSJ는 코로나19사태 이후 앤하이저부시 인베브(ABI) 같은 대형 업체의 미국 내 순매출이 올해 1분기(1~3월) 1.9%늘어났다고 전했다. ABI는 유럽 벨기에에 본사를 둔 전세계 최대 맥주제조업체로 미국 버드와이저와 멕시코 코로나, 한국 카스 등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미국 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라이트 맥주 매출은 같은 기간 10.7%늘어나 인기를 끄는 모양새라고 WSJ는 전했다. 라이트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칼로리와 알코올 도수를 낮춘 맥주를 말한다. ABI사의 버드 라이트, 미국에 본사를 둔 대형 업체 몰슨쿠어스의 쿠어스 라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에 따른 맥주 시장 타격은 미국보다 유럽이 더 크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인들은 80%가 맥주를 산 후 집 등 다른 장소에 가서 마시지만 유럽은 대부분 펍에서 모여 마시기 때문에 소규모 브루어리 뿐 아니라 대형 업체들도 마찬가지로 고전하고 있다고 20일 전했다.
펍 문화가 발달한 영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펍과 바, 식당이 문 닫으면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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