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영미권 국가들을 자극하며 '홍콩보안법' 강행에 나서 국제 사회 갈등을 벌인 여파가 글로벌 금융계로 번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 금융 허브' 홍콩을 주 무대로 영업해온 영국계 글로벌은행들이 '홍콩보안법'을 지지하라는 중국 측 압박 속에 하나 둘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서 눈길 끄는 모양새다.
3일(현지시간) 영국계 글로벌은행 HSBC의 피터 웡 홍콩·상하이 지역담당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 인터뷰에서 홍콩보안법 지지여부와 관련해 "HSBC는 해당 법을 지지한다는 청원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HSBC는 중국 소셜미디어인 위챗에도 서명 사실을 공개했다.
웡 CEO는 홍콩보안법에 대한 미국의 중국 제재 움직임을 의식해 "홍콩의 비즈니스 공동체는 외국의 제재에 반대한다"면서 "해당 법은 홍콩이 글로벌 금융허브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HSBC는 홍콩 사회 질서를 안정·회복시키고 홍콩의 경제 번영과 발전을 위하는 이 법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면서 "홍콩의 강점은 '본토 광동성-홍콩-마카오'를 잇는 통합권역이라는 데 있다"면서 중국 정부와 같은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HSBC 런던 본사는 같은 입장이라면서도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를 새삼 언급했다. 이날 런던 본사 대변인은 웡 CEO 인터뷰에 대해 "우리는 해당 법이 홍콩의 회복과 경제 재건을 위한다는 점, 또 '일국양제'를 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법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는 반응을 냈다.
HSBC는 최근 몇 개월 동안 홍콩의 정치 상황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HSBC가 중국 관영언론 인터뷰와 '위챗'을 통해 홍콩보안법 지지를 공식 표명하게 된 것은 HSBC를 향한 공개 압박 때문이라는 것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 해석이다. 최근 중국 관영언론들은 HSBC를 향해 입장을 정하라고 요구해왔다. 웡 CEO가 인터뷰한 신화통신은 지난 3월 2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중국 공산당 선전기관'이라고 비판하면서 미국 내 경영활동 규제 대상으로 정한 중국 관영언론 5곳 중 하나다.
한편 중국 측이 HSBC를 압박해온 이유는 HSBC의 역사적 상징성 때문이다. HSBC는 19세기인 1865년, 영국이 아시아와의 무역 거래 목적으로 설립한 상업은행이다. 본사가 런던에 있고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감독과 통제를 받는다.
HSBC가 중국 측 압박을 수용한 것은 '차이나머니'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가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은 '일국양제' 원칙을 약화시키며, 국제적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적극 반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HSBC의 영업 무대가 홍콩과 중화권인 만큼 HSBC로서는 중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WSJ는 지난 해만해도 세전 순이익의 90%가 홍콩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또 HSBC가 홍콩 뿐 아니라 중국 본토 도시에서 지난 해 121억 달러 규모의 수익을 거뒀으며, 중화권을 통틀어 벌어들이는 수익이 HSBC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중화권은 중국 관련 권역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홍콩과 마카오다.
같은 날 또 다른 영국계 글로벌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SC)도 성명을 내고 홍콩보안법에 대해 "해당 법이 홍콩 경제와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본다"는 입장을 내놨다. 일단 지지 뜻을 표명한 셈이다. SC도 지난 해 중화권과 동북아시아에서 거둬들인 세전 수익이 총 24억 달러였으며 이 중 60%가 홍콩, 14%는 중국에서 나왔다.
홍콩은 1841년부터 영국령 식민지였다가 이후 1984년 영국과 중국이 체결한 '홍콩반환협정'에 따라 1997년 7월 1일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됐다. 당시 홍콩반환협정에 따르면 홍콩은 중국의 일국양제에 따라 1997년 반환 후부터 오는 2047년까지 50년 동안 중국으로부터의 자치 체제를 보장받고 국방·외교를 제외한 입법과 사법, 행정, 교육 분야에서 자치권을 인정받기로 돼 있다.
다만 지난달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NPC)가 국제 사회 비난을 제쳐두고 통과시킨 홍콩보안법은 중국이 홍콩에 정보기관을 세워 '반(反)중국 행위'를 근절한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국가 분열과 국가 정권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 관련 집행 기관을 수립한다는 내용은 영국과 중국 간 홍콩반환협정 상 일국양제가 아니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강조하는 '하나의 중국'에 가까우며 홍콩 민주주의가 침해될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영국은 홍콩보안법 강행에 적극 반발하며 '이민법 개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법이 실제로 집행되면 홍콩의 자유와 체제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망가질 것"이라면서 "영국 이민법을 개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과거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가진 모든 홍콩인에 대해 영국 시민권을 부여하거나 영국 취업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쳐왔다. 존슨 총리는 “현재 홍콩인 약 35만명이 BNO 여권을 가지고 있으며, 추가로 250만명이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산업기술 절도와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책임 회피 문제를 이유로 각을 세워왔다. 최근 미국은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에 반발해 "홍콩은 더 이상 민주주의·자유 시장주의 시스템이라 보기 힘들다"는 미국 국무부 입장에 따라 '홍콩특별법'상 홍콩에 대한 무역·투자 등 특혜를 폐지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내비쳐왔다.
한편 홍콩에서는 캐리 람 행정장관이 중국 베이징 방문을 앞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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