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가 투자은행(IB)들이 앞다퉈 '주식 매수' 낙관론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손 투자자 등 주요 인사들은 비관론을 제시했다. 화이자·바이오N테크, 모더나에 이어 아스트라제네카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관련 추가 발표를 앞둬 이른바 '컨택트 부문' 투자자들이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과도 반대되는 목소리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일본 큰 손 투자자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날 화상으로 열린 딜북 콘퍼런스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나는 단기적으로 비관적이다"면서 "앞으로 두세 달 안에 어떤 재난이든 일어날 수 있으며 위기 때는 현금이 필요한 만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손 회장은 올해 여름 테슬라와 애플, 넷플릭스 등 간판 기술주에 대한 콜 옵션 40억달러(약 5조7580억원)를 사들여 뉴욕 증시를 들썩인 '고래'로 지목된 바 있는데 이번에 분위기가 다른 발언을 한 셈이다. 콜 옵션은 해당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파생 상품이다.
손 회장은 두세 달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재난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지난 2008년 리먼 브라던스 파산 사건을 언급하면서 하나의 사건이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재확산 탓에 전 세계가 또 봉쇄되면 최악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어서 공격적으로 자산을 팔았다"면서 "애초에 400억달러(44조원)규모를 팔려 했으나 비상 사태에 대비한 유동성을 더 확보하기 위해 총 800억달러(88조원)어치를 매각했다"고 언급했다. 다만 손 회장은 인공지능(AI) 분야에는 기회가 되면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같은 자리에서 어두운 발언을 한 것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마찬가지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운영하면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지원 중인 게이츠는 "백신이 개발되고 포스트(post) 코로나 시대가 와도 여행 부문은 이전과 같지 못할 것"이라면서 "특히 비즈니스 목적의 여행이 50%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항공 운송협회에 따르면 비즈니스 목적의 여행은 미국 항공사 매출 50%를 차지한다. 게이츠는 또 "사무직 출근 근무도 30%이상 사라질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관련 소식이 나올 때마다 뉴욕증시에서는 4대 대표 항공사인 델타·유나이티드·아메리칸·사우스웨스트 항공 주가와 US글로벌제트(JETS) 등 항공주 상장지수펀드(ETF) 시세가 뛴다. 항공주는 관광·정유주 등과 더불어 이른바 '컨택트 주'로 분류된다.
다만 게이츠 뿐 아니라 여행업계에서도 백신 개발이 정상화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지난 16일 트리바고의 마티아스 틸만 최고 재무책임자(CFO)는 배런스 인터뷰에서 "나는 화이자 등 백신 개발 소식을 환영하지만 내년에 여행 산업이 의미있는 반등을 할 지 모르겠다"면서 "무엇보다 2022년 이후에도 사람들이 대륙을 건너 여행하기보다는 근거리 여행을 하는 식으로 선호도가 바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항공·여행산업 정상화가 어렵다는 얘기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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