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자산가들의 자금을 굴리는 PB센터가 기업금융(IB)의 새로운 자금줄로 부각되고 있다. 기업금융(IB)란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 기업 활동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활동이다. 과거 기업금융은 자금운용 규모가 큰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내 자산가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굴리는 자금 규모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IB담당자들이 투자자 확보를 위해 PB센터를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국내 5대 증권사 PB센터의 운용자산규모는 480조원에 달한다. 2011년말 282조원 대비 70%, 2013년말 338조원 대비 42% 성장한 수치다.
PB센터는 비상장주식 블록딜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창구로 자리잡았다. IB담당자들이 기업 상장 준비 과정에서 지분을 매각하고 싶어하는 주주 물량을 받아와 PB센터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강성호 SK증권 경기PB센터장은 “블록딜을 통해 기존 주주들은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투자자는 상장 차익을 노릴 수 있다”며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비상장주식을 대규모로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PB센터가 기존 주주와 투자자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수 매도자간 협의를 통해 매매가격과 물량을 미리 정해놓고 지분을 묶어 팔기 때문에 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최근 강남의 한 PB센터에서는 네이처리퍼블릭 비상장주식 블록딜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기업 유상증자도 PB센터를 통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과 거액 자산가를 연결해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일반공모 유상증자시 발생하는 실권주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고액 자산가는 주가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대규모 주식을 확보할 수 있다.
기관 투자자들의 회사채 투자심리가 얼어붙자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위해 PB센터를 찾는 IB담당자들도 늘고 있다. 요즘처럼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시기에 현대상선BW 한화갤러리아CB 발행이 흥행몰이를 했던 것도 PB센터 지원 사격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장영준 대신증권 압구정지점 부지점장은 “투자 조건이 괜찮은 CB BW 발행이 있을 때마다 고액자산가들로부터 돈을 모아 사모펀드를 결성하고 청약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지난 달 현대상선이 발행한 1500억원 규모 BW의 청약 경쟁률은 28.32대1을 기록했다. 이틀간 청약증거금으로 4조2481억원이 들어왔다. BW투자자는 연 7% 채권 외에도 현대상선 주식을 주당 5000원에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됐다. 21일 기준 현대상선 주가는 6930원으로 투자자가 5000원에 매수해 시장에 판다면 40% 가까이 차익을 얻을 수 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발행한 CB에도 500억원 모집에 총 2조5854억원의 청약이 들어왔다. 당시 개인과 기관투자자에 대한 CB 배정금액을 달리했는데 개인 투자 청약 경쟁률은 79.78 대 1에 달했다. CB는 일반 회사채처럼 만기일에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자 기간 중 발행 기업 주가가 상승하면 주식으로 전환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PB 컨설팅과 IB 투자를 결합한 PIB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KDB대우증권의 PIB서비스 운용 자산은 2013년말 7188억원에서 2015년 10월 기준 3조1759억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하나대투증권의 운용 자산도 같은 기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국내 IB시장 강자 크레디트스위스(CS)도 프라이빗뱅킹(PB)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자산규모 10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천기 크레디트스위스 한국 대표는 “과거에는 초고액 자산가들이 프라이빗뱅커(PB)에 비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 굳이 전문가를 찾지 않았다”며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어지면서 전문적인 자산관리 서비스가 필요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주요 타킷으로 삼은 고객층은 중소·중견기업을 경영하는 오너들이다. 자산관리 서비스와 더불어 2·3세로의 가업 승계, 기업 성장 과정에서 인수·합병(M&A)나 기업공개(IPO)까지 종합적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고액 자산가들의 과도
[김혜순 기자 /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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