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무표정일 때에는 과묵해 보이는데 막상 웃을 때에는 쑥스러움 가득한 미소와 장난기 가득한 웃음소리를 낸다. 어떨 때에는 근엄한 남자처럼, 때로는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우 천정명의 얘기다.
그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하트투하트’를 끝낸 후 인터뷰 등의 모든 일정을 한 주 미뤄야 했다. 대상포진이 걸려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는 그는 “사실 대상포진은 두 번째라서 그 느낌 인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취재진에 오히려 “초기에 잡아서 이 정도”라고 여유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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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천정명은 ‘하트투하트’에서 주목 받아야 사는 정신과 의사 고이석 역을 맡아 안면 홍조증으로 대인기피증까지 가진 차홍도(최강희 분)와의 로맨스를 그려냈다. ‘하트투하트’로 오랜만에 로맨틱코미디를 소화하기도 했고, 그토록 바라던 이윤정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천정명에 스스로 ‘드라마에 애착이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각별했던 ‘하트투하트’를 끝낸 소감을 물었다.
“일단은 행복했다. 군 제대하자마자 촬영했던 드라마가 ‘신데렐라 언니’였다. 그 때 정말 행복했다. 오랜만의 촬영이니 얼마나 신나고 재밌었겠나. 그 때와 비슷한 감정인 것 같다. 다른 작품들도 재밌었지만 힘든 게 많았다. 뜻하지 않게 흘러가는 게 많아서 스트레스도 많았다. 저는 성격상 남들에 표현하지 않고 삭히는 편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재밌는 작품을 만나게 됐다.”
그는 “정말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정말 이상한 건 ‘하트투하트’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주문처럼 똑같은 말을 되뇌고 있다는 것.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모든 배우들이 “‘하트투하트’ 촬영장은 남달랐다”고 말했던 터라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천정명은 “드라마의 최고 선장인 감독님이 ‘해피 바이러스’인데 별 수 있겠냐”고 이윤정 감독을 언급했다.
“사실 감독님께서는 무조건 배우 위주다. 스태프들은 조금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거다. 배우들은 정말 편했다. 감독님께서는 늘 ‘한 번 놀아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 한 마디가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그런 표현을 배우가 되고 처음 들었다. ‘편안하게 놀아보라’는 말과 ‘지금 하던 대로 해라. 잘 하고 있다. 연기만 신경쓰라’고 말하는 것들이 정말 힘이 났다. 그 말 한 마디가 참.(웃음)”
함께 호흡을 맞춘 최강희도 정말 최고의 파트너였다고 천정명은 엄지를 추켜올렸다. 만나기 전에는 ‘성격’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천정명은 최강희를 가리켜 “대단한 배우”라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최강희 누나에 대해서는 처음 만나기 전 정말 걱정을 했다. 그런데 누나가 예상 외로 정말 잘 맞춰줬다. 하루는 누나가 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펑펑 울고 나서 제 얼굴을 촬영하자 그 앞에서 아까처럼 똑같이 펑펑 울더라. 누나가 걱정돼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정말 한 번만 촬영해도 녹초가 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도 강희 누나는 매 테이크 때마다 계속 울어주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대단한 배우구나 싶었다. 드라마를 촬영할 때 서로 주거니 받거니가 잘 되지 않으면 미묘하게 화면에 드러난다. 누나와도 정말 달달한 느낌을 가지고 촬영을 했다. 강희 누나가 조금 특이한 매력의 소유자지만.(웃음) 정말 최고의 파트너라고 할 만 했다.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연기할 때 그렇게 배려를 해주는 사람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여배우 중에서는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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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그는 이어 “최강희 누나와 제가 실제로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께서 말씀하실 정도”라고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윤정 감독의 짓궂음은 비하인드 영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연인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 “껴안으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하면서 촬영장 분위기를 ‘핑크빛’으로 물들여 놓는다.
“이윤정 감독님께서는 정말 최강희 씨와 천정명 씨가 사랑에 빠져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걸 듣고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다고 말했다. 촬영할 때만큼은 내가 지금 최강희를 사랑하고 있다고 되뇌면서 감정을 살려냈다. 감독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감정을 잡을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었다. 계속 옆에서 ‘강희 괜찮지 않아?’라고 말씀하시더라.(웃음) 하루는 감독님께서 저와 (안)소희가 남매로 나오는데 어색해보였던 모양이다. 급기야는 ‘두 사람 껴안고 시작하세요’라고 지시를 내렸다. 처음에는 ‘왜 껴안아야 하냐’고 깜짝 놀랐다. 결국은 둘이 안았는데 ‘어색하다. 다시 안아라’고 말해서 그렇게 세 번을 껴안았다. 그런 후에 갑자기 ‘두 사람 뽀뽀하세요’라고 해서 ‘왜 남매인데 뽀뽀를 하냐’고 막 웃었다. 감독님께서 그런 게 있다.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를 잘 만드시는 거 같다.”
그런 천정명에게도 ‘하트투하트’를 촬영하면서 고민이 있었을 터. 천정명은 매 작품 매 캐릭터를 만날 때 마다 ‘어떻게 표현하지’라는 걱정은 한다고 고백했다. 특히 고이석이라는 캐릭터는 차홍도와의 러브라인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전에는 매일같이 투덜거리기만 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해 본인도 더욱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고이석의 캐릭터는 자칫 밉상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걱정을 했다. 너무 밉상으로 만들면 극중 균형을 망가뜨리고, 러브라인의 중심도 깨지고 별로 안 예뻐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이석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내야 작품에 잘 녹아들까 싶었다. 감독님과 강희 누나가 있어서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진짜 많이 도와줬다. 정말 힘들긴 했다. 겉으로 보면 짜증만 내는 캐릭터니까 감독님께서도 살짝 걱정은 있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만큼 잘 그려냈던 것 같다.”
천정명은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면서 이윤정 감독의 스타일을 언급했다. 그토록 극찬하던 이윤정 감독과도 맞지 않는 게 있었던 걸까. 천정명은 첫 회의 촬영을 회상하며 말도 하기 전에 혼자 웃음을 ‘빵’ 터뜨렸다. 첫 회 첫 신이 어지간히도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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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첫 날 첫 신에 정말 준비를 많이 해서 갔는데 그 현장에서 감독님께서 모든 걸 다 갈아엎었더라.(웃음) 동선부터 대사까지 전부 바뀌어서 ‘멘붕’이 왔다. 감독님께서는 태연스럽게 ‘원래 스타일이야’라고 하셨다. 스크립터 누나께서 제게 ‘얼른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원래 이거보다 심한데 첫 신이라 덜 한 거다’라고 조언을 해주시더라. 정말 그 후에도 계속 그렇게 바꾸셨다. 그게 힘들긴 했지만, 적응이 되니 대본을 안 외우게 되더라.(웃음) 중반 이후부터는 느낌 정도만 익히고 현장에서 바로 즉흥적으로 할 때가 많았다. 언제 한 번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이 찍힌 사진을 봤는데 저는 완전 넋나간 표정을 하고 있더라. 감독님은 악마처럼 웃고 있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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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드라마는 내내 차홍도와 고이석의 달달한 분위기가 이어지다 끝이 얼마 남지 않은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차홍도와 고이석의 과거가 얽히면서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차홍도가 고이석의 형을 죽게 한 화재의 범인이라는 게 드러나면서부터 분위기는 180도 변했다. 당시 시청자 사이에서도 이들의 관계를 꼬이게 만든 과거의 등장에 호불호가 갈렸다. 천정명도 조금은 그 부분이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막판에 차홍도와 고이석의 과거가 나온다. 사실 저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좀 더 빨리 나올 줄 알았다. 못해도 9회 정도에는 나올 것 같았는데 후반부에 나와서 갑자기 몰아쳤다. 약간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걱정이 됐다. 그것 때문에 막판에 대상포진 걸렸나보다.(웃음) 저도 15,16회는 조금 아쉬웠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만족스럽지 못했다. 한 2부 정도만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쉬움이 남았다.”
모든 배우들과 제작진이 ‘하트투하트’에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고 일컬을 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하지만 시청률은 1%대를 웃돌며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조심스레 꺼낸 시청률 얘기에 천정명은 쿨하게 “시청률 잘 나올 줄 알았는데 아쉽더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애정이 컸던 만큼 더욱 잘하고 싶었단다.
“시청률이 잘 나올 줄 알았다. ‘삼시세끼’는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웃음) 어떻게 보면 같은 요일, 바로 이어지는 시간대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차이 날까 싶더라. 주변에서 반응이 좋다고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래서 더욱 아쉬웠던 것 같다. 반응은 좋은데 시청률은 그만큼 높지 않으니까. 하지만 감독님이나 출연진 모두가 시청률 상관없이 그 순간을 행복해했다. 그래서 저도 부담을 내려놨다. 초반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감독님께서는 ‘나는 상관 안 한다’고 말씀해주셔서 조금 편안해졌다. 감독님께서도 이번 드라마를 정말 재밌게 찍었다고 감탄하셨다.”
천정명은 “‘하트 투 하트’가 시즌2가 나온다면 정말 무조건 하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윤정 감독이 다른 작품에서 러브콜을 보낸다면 두 말 않고 출연할 거라고도 덧붙였다. 배우들끼리는 ‘하트투하트’가 영화로 가야 한다고 농담을 했을 정도였단다. ‘하트투하트’의 극장판을 꿈꾸는 천정명에 “본인의 봄날은 언제 올 것 같냐”고 물었다.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연애세포를 그렇게 자극했는데 그걸 연기하는 천정명은 더 했으면 더 하지 않았을까.
“좋은 사람을 빨리 만나고 싶다. 좋은 사람이라는 게 참 묘하다. 마음이 맞아야 한다. 말이 통하는 사람.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되는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제가 한 10번 연락하면 상대방도 두 세 번은 먼저 연락을 주는 그런 주거니 받거니가 됐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너무 일방적으로 되고 저 또한 지치는 것 같다. 마음도, 성격도 맞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을 하다보면 사실 친구를 많이 못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친구 같은 애인이 좋다. 뭘 해도, 어딜 가도 정말 재밌는 사람. 영화를 봐도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얘기도 하면서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동성 친구만큼이나 편하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면 좋겠다.”
MBC ‘진짜 사나이’에서 활약할 만큼 예능감도 충만한 천정명은 “기회가 된다면 자유로운 분위기의 예능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계획은 없지만 조만간 또 다른 작품으로 시청자를 찾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트투하트’를 회상하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정명에게 ‘하트투하트’는 따뜻한 봄날과 같아 보였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