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토대로 혁신하겠다던 민주당은 그러나, 지금껏 무기력하고 지리멸렬한 야당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만 무성합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 등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월 국립현충원 땅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삼배를 하며 “잘못했습니다. 거듭나겠습니다. 회초리로 때려주십시오”라고 했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한마디로 그날 TV나 신문에 나오려고 사진 한장 찍고 난 후 돌아서는 모두 딴짓만 하고 있는겁니다.
‘대선패배 반성문’ 격인 ‘민주당 대선평가보고서’는 대선이 끝난 지 4개월이 지난 오늘에야 발표될 예정입니다.
보통 ‘대선평가 이후 당 혁신안 마련’이 정상적인 순서이지만, 민주당은 정치혁신안부터 먼저 발표했습니다.
진단 없이 처방부터 먼저 나온 황당한 형태입니다. 당 대선평가위원회는 애초 3월 말에 보고서를 내려 했으나, 대선 패배 책임에 대한 표현 수위를 놓고 내부 논쟁을 벌이느라 보고서 발간을 늦췄습니다.
평가위에 참여한 한 교수 "교수그룹이 평가보고서 초안을 써오면 민주당 의원들이 심사하듯 시비를 걸었다"며 반성의 기미도 없는 민주당을 비판했습니다.
그나마 오늘 발표예정인 대선 평가보고서에서는 선거패배에 책임이 있는 문재인과 친노를 겨냥한 냉정한 비판이 담겨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5·4 전당대회 이후 2년간 민주당을 책임질 당 대표 경선은 당의 혁신을 위한 논쟁의 장이 되지 못한 채, 그저‘주류-비주류 경쟁구도’로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당 대표에 출마한 강기정·김한길·이용섭·신계륜 의원은 “계파 청산”, “당원 중심주의”, “민주당 자강론”만 내세울뿐, 국민들 앞에 통렬히 반성하며, 혁신하겠다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최고위원에 출마한 장하나 의원조차 "현재 전당대회는 계파 문제, 친노·비노 문제로 협소하게 흐르고 있다"고 통탄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48%에 해당되는 서민·근로계층의 이해와 요구를 어떻게 끌어안고, 민주당이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어디에도 없다는 이야깁니다.
4·24 재보선이 대선공약 후퇴 등 박근혜 정부의 실책에 맞서 야당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이지만, 민주당은 이마저도 사실상 포기해버린 상태입니다.
민주당은 이미 노원병에는 안철수 후보를 의식해 무공천을 결정했습니다. 스스로가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무정란 알'을 낳는 닭이 버린 겁니다. 이제 민주당은 서울 노원병에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만을 구경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당대표에 출마한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안철수가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돕니다. 이대로 가다간 리더십도, 민주당의 정체성도 모두 잃어버릴 지경입니다.
부산 영도, 충남 부여·청양 선거에선 후보를 냈지만 제1야당의 자존심을 지켜줄 의미 있는 승부를 낙관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민주당 의원들도 자신들이 욕먹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들이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결국 민주당 말고 다른 대안이 있겠느냐"고 느긋해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제 1야당인 민주당이 '정치적 알박기 정당’이 돼가고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