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94명이 숨지고 10명이 실종된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혐의(살인 및 살인미수, 수난구조법 위반 등)로 기소된 선장 이준석씨(70)에 대해 대법원이 살인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2일 이씨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의 상고심에서 “이씨는 선내 대기 명령에 따른 승객들을 퇴선시키지 않음으로써 탈출이 불가능하게 했다”며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는 대형 인명사고와 관련해 부작위(마땅히 해야할 행위를 하지 않음)에 의한 살인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례다.
대법원은 1등 항해사 강모씨(43)와 2등 항해사 김모씨(48), 기관장 박모씨(55)에게 살인 대신 유기치사 등 혐의를 적용한 원심 판단을 유지하는 등 나머지 승무원 14명의 상고를 전부 기각하고 징역 1년6개월∼12년을 확정했다.
이번 재판에선 이씨와 1·2등 항해사, 기관장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들에게 승객 등이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퇴선명령 등 필요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이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하급심 판결은 엇갈렸다.
1심은 이씨에게 살인 대신 유기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36년을 선고했다. 정황상 이씨가 퇴선명령을 했다고 본 것이다. 기관장 박씨는 살인 혐의가 인정됐지만 승객이 아닌 동료 승무원 2명을 구호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였다.
반면 2심은 이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씨가 세월호에서 탈출할 때도 선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여전히 나오는 등 퇴선명령 지시가 없었다는 근거가 더 설득력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승무원 3명은 선장의 지휘를 받는 처지인 점 등을 감안해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형량도 징역 15∼30년에서 7∼12년으로 줄였다.
대법원은 “적절한 시점의 퇴선명령만으로도 상당수 피해자의 탈출과 생존이 가능했다”며 “승객들이 익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내버려둔 채 먼저 퇴선한 것은 선장의 역할을 의식적이고 전면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선장은 선박의 총 책임자로서 구체적인 구조계획을 신속하게 수립·실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이씨의 부작위는 작위에 의한 살인의 실행행위와 동등한 법적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에게는 살인과 살인미수 외에도 업무상과실선박매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선박, 선원법·해양환경관리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이날 대법원 선고로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은 상당 부분 마무리됐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김한식 대표(73)에게 징역 7년을 확정했다. 같은
사고 당시 구조를 부실하게 해 승객들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전 목포해경 123정장, 관제를 소홀히 한 혐의를 받는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직원 13명은 상고심 심리 중이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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