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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사랑해요"
오늘 아침에도 아빠 번호로 문자를 보냈어요. 그런데 한 번도 답장을 받아본 적은 없어요. 조금은 속상하기도 해요. 엄마는 그런 저를 보고 "아빠가 널 보러 오기 위해 돈을 열심히 벌고 계셔서 많이 바쁘실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야 저를 볼 수 있으니까, 답장이 없어도 아빠를 이해할 수 있어요.
엄마는 매일 아침 영어를 한마디씩 알려주셨어요. 엄마는 외국어를 잘해야 해외에 계신 아빠를 만날 수 있대요. 사실 엄마는 영어학원 강사를 하셨거든요. 그 곳에서 유학 오신 한국인 아빠를 만나셨다고 하셨어요.
아빠가 적극적인 스타일이셨대요. 엄마를 만날 때면 사랑한다고 귓가에 속삭이는 로맨티스트이시기도 했대요. 엄마는 이런 아빠의 진심에 홀딱 빠졌다고 알려주셨어요.
아빠는 매일 멋진 노래도 불러주고 2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알콩달콩 추억을 만드셨대요. 지금도 엄마는 가끔 그 노래를 흥얼거리시곤 해요. 그렇게 정성스러운 구애 끝에 지금의 나를 가지셨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흘리셨대요. 하지만 아빠는 웃지 않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 아빠는 "한국에 계신 할머니에게 아기의 존재를 말씀드리고 돌아올게"라고 하셨대요. 그리고는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남기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셨대요. 엄마 품에 안겼던 아기 시절이었지만, 마지막 아빠의 손길을 여전히 느낄 수 있어요.
전 아빠가 다시 오실 거라고 믿으면서 엄마 말도 잘 듣고 지냈어요.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몇 번의 계절이 바뀌어도 오시질 않으셨어요. 스케치북에 두 분이랑 손잡고 놀이동산 가는 그림도 그렸는데….
어느 날 엄마는 아빠 찾기를 도와주실 분이라며 한 아주머니를 모셔왔어요. 그 아주머니에게 엄마는 아빠가 남기신 쪽지를 보여드렸어요. 쪽지에는 "Gegyol mini 18 Korea"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한참 쪽지를 보시더니 돌연 눈시울을 붉히셨어요. 아주머니는 엄마에게 "이 곳은 지진이 나서 없어진 지역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쪽지는 "그걸 믿니(Gegyol mini)"라는 뜻이었대요.
그날 이후로 저는 한국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와 같은 아이를 ‘코피노’라고 부르는 것도 알게 됐어요. 인터넷에서 봤는데, ‘코피노’가 최소 1만 명에서 최대 3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했대요. 주변에도 친구들이 많은데,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한국이란 나라까지도 싫어하더라고요. 물론 그 단어 자체도 끔찍이 싫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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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옆집 아주머니께서 한국의 법원에 소송을 걸으셨대요. 한국에 있던 남편을 찾았는데, "필리핀에 내가 낳은 자식도 없고, 부부도 아니다"라면서 매정하게 내치셨더래요. 화가 난 아주머니는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셨고, 한국 법원은 "부모 자식 사이가 맞다"며 혈연관계를 인정했대요. 아저씨에게는 "매달 3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하
엄마는 여전히 아빠가 돌아오실 거라 믿고 있어요. 아빠가 분명 할머니께 제 존재를 알리고 오신다고 하셨거든요. 날 쓰다듬던 아빠의 손길도, 엄마 귓가에 속삭였던 사랑한다는 말들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분명, 쪽지를 읽어주신 아주머니가 거짓말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그렇죠 아빠?
[MBN 뉴스센터 신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