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문학인' 밥 딜런, 한국의 음유시인은?…故 김광석
↑ 밥 딜런/사진=연합뉴스 |
미국 포크록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탁월한 시어로 노래하는 뮤지션에게도 이목이 쏠립니다.
국내에도 한 편의 시 같은 노랫말로 소외된 삶과 세상을 향한 저항 등 시대의 고민을 담아낸 '음유시인'들이 여럿입니다.
김민기, 정태춘, 한대수, 전인권과 고인이 된 김광석 등이 우선적으로 거명됩니다.
◇ '록의 전설' 전인권·'영원한 가객' 김광석
1960~1970년대가 청바지, 통기타로 대표된 포크의 시대였다면 1980년대는 록 음악이 꽃을 피운 시기였습니다.
그중 1985년은 국내 록 음악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들국화의 1집 '행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전인권(62)의 포효하는 소리와 진취적인 기상의 노랫말은 젊은이들의 자유가 신음하던 1980년대 민주화를 향한 분출구가 됐습니다.
이 앨범에서 전인권은 '행진' 한곡을 만들었고 '그것만이 내 세상'과 '세계로 가는 기차' 등은 최성원과 조덕환 등 다른 멤버들이 썼습니다.
그러나 전인권은 솔로 싱어송라이터로도 묵직한 깊이를 드러냈다. '사랑한 후에'와 '돌고 돌고 돌고', '돛배를 찾아서'를 비롯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삽입곡으로 10여년 만에 재조명된 '걱정말아요 그대'까지 그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중략)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걱정말아요 그대')
전인권은 "밥 딜런을 무척 좋아했다"고 수상을 축하하며 "가장 애착이 가는 '돌고 돌고 돌고'를 비롯해 내 노랫말은 인생의 허무주의가 시작점이다. 그러나 수동적인 우울감이 아니라 능동적인 가치가 깃들었다"고 자평했습니다.
1996년 세상을 떠난 김광석은 앞선 선배들에 이어 1980~1990년대 청춘을 대변했습니다.
그는 밥 딜런의 곡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를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란 제목으로 번안해 부른 인연이 있습니다.
노래패 '새벽'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 그룹 동물원을 거친 김광석은 1989년 1집을 시작으로 젊은이들의 가슴 깊이 파고드는 시어를 들려줬다. '서른 즈음에'와 '이등병의 편지' 등 자작곡이 아닌 대표곡도 많지만 직접 쓴 아름다운 노랫말로 '음유시인'으로도 불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선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라며 한편의 연서(戀書)를 노래했습니다.
'일어나', '그대 웃음 소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자유롭게' 등 서사와 서정을 넘나든 가사는 말하듯 노래하는 낭랑한 그의 목소리를 통해 푸른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 '청년 문화의 원형' 김민기
김민기(65)는 1970년대 암울하던 시절 아름다운 노랫말로 현실을 고발하며 통기타 음악 흐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는 시인이자 화가인 밥 딜런처럼 음악가이면서도 연극 연출자로 우뚝 서는 등 여러 장르를 섭렵했다는 점에서도 닮았습니다.
'아침이슬'과 '그날' 등 김민기의 곡들은 꾸밈없는 목소리의 양희은 1집(1971년)을 통해 세상에 처음 나왔습니다.
같은 해 나온 김민기의 1집에는 '아침이슬'과 '그날'을 비롯해 '바람과 나', '그날', '길', '꽃 피우는 아이' 등이 수록됐는데 이 앨범은 당시 젊은이들이 느낀 시대의 답답함을 틔워주는 해방구가 됐습니다.
그러나 1975년 긴급조치 이후 체제에 반기를 드는 곡으로 낙인 찍힌 '아침이슬'을 포함해 그의 대부분 노래는 금지곡이 됐습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아침이슬')
이후에도 그가 공장 생활을 하며 만들었다는 '상록수'와 김지하가 쓴 연극 '금관의 예수'에 참여하며 만든 곡인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비롯해 '작은 연못', '봉우리' 등의 노랫말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아픈 시였습니다.
최성철 페이퍼레코드 대표는 "청년 문화의 원형이자 시대 유감의 대변자로 대중음악사에 우뚝 선 봉우리"라고 평했습니다.
김민기는 1991년 극단 학전을 설립하는 등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연출가로 나섰습니다.
특히 독일 원작을 번안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그는 우리 현실에 맞게 개사한 시적인 노랫말로 문학적인 표현을 이어갔습니다.
◇ '서정 시인이자 투사' 정태춘
1978년 데뷔해 초창기 정태춘(62)은 자연과 세상을 노래했습니다.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사랑하는 이에게' 등 때로 부인 박은옥의 목소리가 곁들여진 그의 노래는 관조적인 서정시였습니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자색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 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테요'('시인의 마을')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정태춘은 약자의 편에 서서 현실을 적극적으로 대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의 서사시 같은 5집 '아, 대한민국'(1990년), 6집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년)는 그가 사회 약자를 대변하는 투사가 된 분수령입니다.
이후 그는 음반 사전검열 철폐를 위해 반기를 들고,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 기지 확장 반대 공연을 하는 등 '저항 가수', '문화운동 투사'라는 꼬리표를 굳혔습니다.
그는 2002년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끝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했다가 2012년 10년 만에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발표하며 삶의 절망부터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까지 초기작과 같은 시어들을 다시 꺼내놓았습니다.
정태춘은 11집 인터뷰에서 "초기의 노래는 나 혼자만의 독백, 일기였지만 중반에는 발언, 투쟁을 담은 사회적인 일기였다. 11집은 아내를 위한 노래였기에 다시 독백 같은 곡들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히피 문화의 선구자' 한대수
'히피 문화의 선구자',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로 꼽히는 한대수(68)는 미국에서 청년기를 보내며 밥 딜런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으로 꼽힙니다.
번안곡이 유행하던 1960년대 말 미국에서 건너온 그는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 무대에서 성대를 긁는 거친 목소리로 기타를 연주하며 자작곡인 '행복의 나라'와 '바람과 나'를 불렀습니다.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행복의 나라')
한대수는 '바람과 나'는 고1 때 아버지가 있는 롱아일랜드로 건너가 2년 반가량 살던 시절의 외로움이 스민 곡이며, '물 좀 주소'도 사랑의 결핍, 사회와 부딪힘에 대한 노래인데 자신의 의도와 달리 정치적으로 해석된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 탓에 초기작인 1집과 2집은 1970년대 체제 전복 음악으로 낙인찍히며 금지곡이 됐습니다.
그는 이처럼 반전과 세계 평화, 사회·시대의 아픔에 시선을 둔 음악인으로 주목받았지만 사랑과 이별
1집의 '사랑인지?'를 비롯해 헤어진 첫 아내와 가슴 아팠던 사연을 담은 '그대', 지금의 부인인 옥사나 알페로바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만든 '투 옥사나' 등이 있습니다.
그 또한 뮤지션이면서도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며, 수려한 필력으로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