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문화계 블랙리스트' 본격 조준…김기춘 직권남용 혐의 처벌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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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계 블랙리스트 김기춘 / 사진=MBN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 착수함에 따라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들의 처벌 가능성에 관심이 쏠립니다.
이 의혹은 작년부터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 1만명설'로 떠돌던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문화·예술인들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이 전날 의혹에 연루된 인물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가고 여러 '버전' 가운데 실제 명단 일부를 입수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수사의 향배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어떤 내용 담겼나
이 리스트는 2014년 전후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이 작성하고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문화예술인은 1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체부가 청와대와 협의 아래 여러 차례 수정·보완했다는 증언이 나온 상태입니다.
리스트에는 ▲ 세월호 참사 관련 시국선언에 참여한 인사 ▲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인사 ▲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인사 등이 대거 포함됐다고 합니다.
특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조윤선 문체부 장관을 우선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업무일지에는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추정되는 표기와 함께 "사이비 예술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또 "문화예술가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지시 내용도 적혀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7일 '최순실 게이트' 국회 청문회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모철민 당시 교육문화수석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왔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도 전날 "리스트 이전에 구두로, 수시로 김기춘 실장 지시가 모철민 수석 등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됐다"고 밝혔다. 그는 퇴임 한 달 전인 2014년 6월 문제의 리스트를 직접 봤다고도 했습니다.
◇ 법원 판례는…정당한 직무권한 밖 행위…타인 이익 해치면 인정
결국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의혹의 시발점인 셈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처벌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검은 전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영장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적용됩니다. 법을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이 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이때 일반적 직무권한은 반드시 법률상의 강제력을 수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무원이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불법을 행사하는 행위는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정당한 직무집행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사안도 블랙리스트 작성이 '일반적 직무 권한' 이내의 문제인지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 전반을 살펴보는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의 포괄적 직무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나옵니다.
현직 한 판사는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이나 대통령과 모든 국정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위치"라며 "정권 성향에 반하는 리스트 작성도 일종의 직무 권한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이 농수산물시장 관리공사 대표이사에게 요구해 수의계약으로 대통령 근친에게 일부 시설을 임대하도록 했다가 직권남용죄가 인정된 사례가 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이 특별교부세의 교부 대상이 아닌 특정 사찰의 증·개축 사업을 지원하는 특별교부세 교부 신청 및 교부 결정을 하도록 한 행위, 국세청장이 특정그룹에 대한 추징 예상세액안을 보고받으면서 추징세액을 더 낮춰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행위도 직권남용죄가 인정됐습니다.
관건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판례에 따르면 여기서 '의무'란 법률상 의무를 가리킵니다. 단순한 심리적 의무감이나 도덕적 의무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권리행사 방해'는 '구체화된 권리의 현실적인 행사가 방해된 경우'로 인정돼야 합니다. 여기서 '권리'란 꼭 법에 명기된 권리가 아니더라도 법령상 보호돼야 할 이익이면 됩니다.
서울시 교육감이 인사담당 장학관 등에게 지시해 특정 교원들을 적격 후보자인 것처럼 추천하거나 임의로 평정점수를 조정하는 방법으로 승진 임용하거나 그 대상자가 되도록 한 경우 직권남용죄가 인정된 판례가 있습니다.
단순히 리스트 작성만으로는 직권남용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를 토대로 김 전 실장 등이 문체부나 산하기관으로 하여금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끊도록 지시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혐의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특검이 전날 전남 나주
특검 관계자는 "직권남용과 관련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을 받은 것"이라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