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호텔과 일반 관광호텔로 양분화 되어 있는 호텔 업계에 저렴한 가격과 특급호텔 수준의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초 비즈니스 전문 호텔을 만든 CEO가 있습니다. 국내 호텔 업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 주명건 대표입니다. 한국 호텔 산업의 선두주자로서 더 나은 호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노력하는 (주)앰배스텔/이비스 앰배서더 주명건 대표. 그의 이야기를 MBN ‘정완진의 The CEO’ 제작진이 직접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Q. 자신의 학창시절을 돌아본다면?
농구를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승부사 기질이 좀 남달랐던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한 가지 좀 기분이 나빴던 게 있다면, 보통 ‘운동하는 학생’이라고 하면 속된 말로 ‘머리가 비었다.’라고 인식이 많은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싫어서 어느 과목 하나라도 정말 잘 해보자, 라고 생각을 했고 그 때 타깃으로 잡은 과목이 ‘영어’였습니다. 잠도 아껴가며 하루에 10시간 정도씩 공부하다보니, 어느덧 제 영어 성적은 전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나중엔 이 영어가 제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되었는데, 어쨌든 사람 일이란 게 참 알 수가 없어요. (웃음)
Q. 영어가 추후 회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던가요?
1980년 대학 졸업과 함께 삼성그룹 공채 20기로 입사했습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해외에서 저의 실적이 다른 직원들보다 좀 더 나을 것 같다고 해서 해외 쪽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생활이었던 만큼 남들처럼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지만 저의 눈에는 중동 건설 붐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중동에서는 건설 붐이 한창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건설업이 호황을 맞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삼성그룹을 퇴사하고 1982년 한진그룹 한진개발 해외사업부에 입사했습니다. 중동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은 활동적인 성향을 지녔던 저와 잘 맞았죠.
Q. 그렇다면 관광업에 종사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퇴사를 결심할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88서울올림픽 유치로 국내 관광 산업이 뜨고 있던 때였습니다. 평소 도전하기를 좋아했던 저로서는 새롭게 뜨는 분야인 관광업이 눈에 들어왔죠. 해외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경험도 있었고 학창시절부터 갈고 닦은 영어 실력도 있었기 때문에 관광업에 종사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런 저를 만류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관광업에 대한 저의 열정과 호기심을 꺾기엔 무리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 한 채 1986년 앰배서더 호텔 그룹 개발사업부에 입사를 했습니다.
Q. 앰배서더 호텔 그룹 입사 후 어떤 일을 겪으셨나요?
내부 사정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습니다. 합작 사업을 위한 프로젝트가 10년 째 유명무실한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이 같은 회사의 사정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합작사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투자 제안서를 뿌리고 다니며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프랑스의 아코르(Accor)사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Q. 합작 계약 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기나긴 협상 끝에 아코르 사 브랜드 중 하나인 노보텔을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고, 그런 다음 노보텔을 특급호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고급화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은 합리적이되 특급 호텔 수준과 다름없는 탄탄하고 내실 있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었죠. 이 전략은 실속 있고 저렴하게 묵을 만한 곳을 찾던 20~40대 실무자급 비즈니스맨들에게 통했습니다. 실속형 비즈니스 호텔인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점과 독산점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소비자들과 업계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고요.
Q. 노보텔 앰배서더 성공 이후 어떤 사업을 추진하셨나요?
노보텔 앰배서더를 운영하면서 앰배서더 호텔 그룹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또 다른 틈새시장을 뚫기 위한 사업 구상에 돌입했습니다. 노보텔 앰배서더보다 가격경쟁력이 우수하고 알찬 서비스를 내세운, 폭넓은 소비자층을 공략하기 위한 이른바 알뜰형 비즈니스 호텔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현재의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입니다. 예를 들어 벨맨이나 룸서비스 등의 편의시설을 과감히 줄이고, 고객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컨셉이었습니다. 인건비를 줄여서, 전체적인 호텔 서비스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전략이었죠. 이러한 전략을 갖춘 이비스 앰배서더는 노보텔 앰배서더 만큼이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개관 1년 만에 객실점유율이 90%를 웃돌 정도였으니까요.
Q. 승승장구하셨네요. 어려운 시절은 없으셨나요?
사실 노보텔 앰배서더 독산점을 개관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강남에 이어 독산점까지 개관하면서 부채가 있었는데, IMF 외환위기로 인해 그 부채가 불어났고 앰배서더 호텔 그룹은 자금난에 빠지고 말았죠. 그때는 안 힘든 기업이 없었잖아요.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조와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Q. 위기 극복은 어떻게 하셨나요?
어려울 때일수록 회사 내부적으로 똘똘 뭉쳐야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선 회사와 대립하고 있던 노조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노조와의 관계가 회복되자 곧바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의 전략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단합을 하며 회사를 어려움 속에서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Q. 앰배스텔/이비스 앰배서더 CEO로 등극하게 된 비결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비결은 그냥.. 열심히 한 게 비결 같아요.(웃음) 호텔업계는 호텔이라는 주어진 공간에서 생산, 판매, 소비가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적이 올라가면 그 지점부터 정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직이 정체되어 있다 보니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아 호텔 종사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요.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과감한 변화와 도전이 필요합니다. 기업이라는 게 늘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 또한 노보텔 앰배서더나 이비스 앰배서더와 같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 된 것이고, 그러한 노력이 인정을 받아 2001년에 결국 CEO에 취임하게 되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현재는 어떤 일을 진행하고 계십니까?
조금도 사업을 게을리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올해는 이비스 앰배서더 인사동, 2015년 이비스 앰배서더 오창이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합리적인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비스보다 좀 더 저렴한 비즈니스모델인 이비스 버짓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죠.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1993년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