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러시아를 막으려면 중국과 친하게 지내고, 일본과 결합하며, 미국과 연결해야 한다.
1880년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김홍집은 청나라 참사관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을 가져와 고종에게 전합니다.
19세기 말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의 세력 다툼에 휘말린 조선은 중국의 전략인 것도 모른 채, 조선책략의 지침대로 미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으며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펼칩니다. 그 결과, 개방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국론 분열을 가져왔고, 그 혼란을 틈 타 일본은 아예 한반도를 가지려 하죠.
결국, 강대국의 야욕에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갈등과 분열만 야기한 조선은 망했고 일제 치하에서 35년간 나라 잃은 치욕을 겪어야했습니다.
그로부터 130여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은 연일 핵무기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고, 미국은 사드 기지를 한반도에 배치하려 합니다. 자신들의 안방을 미국이 들여다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중국은 반발하고, 그 와중에서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하며 제국주의의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죠.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사드 배치에 대해 남남 갈등이 크고, 중국은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문화 단절에 경제 보복까지 암시하며 압박해오고 있는 이 와중에, 같은 당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늘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중국에 갔죠. 중국 방문을 반대한 정부는 그렇다고 외교력을 발휘할 전략도, 카드도 없고, 여야는 계속해서 서로를 비난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130년 전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죠. 이들이 행여 김홍집처럼 조선책략이라도 들고 오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중국 문제 전문가인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연미(聯美)·화중(和中)·협일(協日) 정책을 제안했습니다.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중국과 화합하며, 일본과 협의한다' 즉, 이제 주변국 사이에서 눈치만 볼 게 아니라 갈등의 중심에 있는만큼 한국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한반도에 외교적 긴장감이 커질 때마다 나오는 얘기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만한 외교력과 국력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궁해집니다.
국력과 외교력이 떨어진다면 뭉치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요? 내부의 갈등, 대외적 혼란…. 오죽하면 중국이 이런 분열을 틈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우리 지식인들에게 손을 뻗치고 있겠습니까?
지금 한국에 필요한 책략, 그것은 눈치가 아닌 '협치'입니다. 분열은 타국에 기회만 줄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