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그리고 친일파…71주년 광복절을 맞아도 잔재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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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 이완용/사진=연합뉴스 |
오늘(15일) 광복절을 맞이한 가운데 친일파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완용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완용은 을사오적 중 한 명으로 1905년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을사조약을 맺는데 동의한 대한제국 대신입니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잃고 본격적인 일본 식민지 체제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완용을 비롯한 많은 친일파들은 막대한 부를 손에 넣고 부유한 생활을 하였지만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끼니 조차 연명 못하는 곤궁한 삶을 살았습니다.
광복이 된지 71년이 된 지금도 그 부는 대물림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2010년 정부는 친일파 168명의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키기로 결정했지만 이들의 후손들이 연달아 소송을 내면서 벽에 부딪친 바 있습니다.
특히 이완용이 주도한 친일 단체의 고문으로 활동한 이해승과 관련된 소송은 아직 종결되지 않아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이해승은 친일 활동으로 인해 한일합병 이후 최고 귀족인 '후작'에 봉해졌습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이해승의 300억대 재산을 환수하기로 결정했으나 그의 손자인 그랜드힐튼 호텔 회장 이우영 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내며 10년째 지지부진한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소송이 마무리되더라도 친일파가 일제 강점기 보유했던 재산에 극히 일부밖에 되지 않습니다.
특히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여의도 면적 두 배에 달하는 토지를
이에 전문가들은 "재산 환수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빠르게 완료하고, 그 정신을 바탕으로 독립 유공자들에 대한 예우와 지원사항을 다시 점검해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친일 청산의 당위성을 주장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