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했던가.
안테나 프로듀서 유희열은 싱어송라이터 이진아의 음악을 영화 '곡성'에 비유했다. 대중의 지지를 얻는 인기곡들이 대체로 음악적으로 무난한 흐름을 보여주지만 비평할 만한 거리를 남기지 않는 반면 이진아의 음악은 마치 '곡성'처럼, 호불호는 크게 갈리지만 토론꺼리를 남기는 음악이란 얘기다.
2년 전 SBS 'K팝스타4'에서부터 그랬다. 이진아는, 그리고 이진아의 음악은 등장 자체만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박진영은 'K팝스타' 사상 최초로 만점을 줬고 양현석은 그의 무대를 그저 넋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유희열은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이진아를 프로듀싱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이같은 심사위원들의 뜨거운 극찬과 "천재의 등장"이란 호평을 받았음에도 이진아의 음악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는 꽤나 선명했다. 그의 음악에 호의적인 이들은 심사위원들과 비슷한 류의 감상을 내놨지만 반대 의견을 지닌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후자의 경우 그의 음악성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내놓은 게 아니라 이른바 '귀(여운)척'하는 듯한 목소리가 싫다던가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는 류의 선호의 차이에서 비롯된 불호였단 점이다.
하지만 그 '불호' 때문에 이진아의 음악을 안 듣고 건너뛴다면, 천편일률적인 음악의 시대에 길들여진 당신의 귀에게는 적잖이 아쉬운 일이 될 지도 모르겠다. 10일 공개된 이진아의 데뷔 싱글 '애피타이저(Appetizer)'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앨범은 이진아가 올해 3부작으로 계획 중인 '진아식당' 프로젝트의 첫 걸음으로, 타이틀곡 '배불러'와 '라이크 앤 러브(Like &Love)' 총 2곡으로 채워졌다. 이진아는 두 곡의 작사, 작곡에 직접 나섰으며 소속사 선배 유희열, 신재평(페퍼톤스)이 각 곡의 편곡에 도움을 줬다.
'배불러'는 짝사랑에 빠져 그 사람을 생각만 해도 배부른 심정을 '이진아스러운' 화법을 통해 밀도 있는 감정선으로 표현했다. 대중가요에서 접하기 힘든 재즈 베이스와 다양한 악기편성이 돋보인다. 'K팝스타4' 당시처럼 일상적인 접근법에 보다 밀도감이 높아졌단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라이크 앤 러브(Like &Love)'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 사이에서 겪게 되는 귀엽고도 진지한 고민을 따뜻하고 촘촘한 리듬과 멜로디로 쌓아 올린 곡으로 정교한 피아노, 치밀한 재즈화성, 예상치 못한 그루브가 유쾌하게 어우러졌다. '신재평 스타일'의 편곡이 흐르지만 그마저도 '이진아스럽게' 완성됐다.
이쯤 되면 "장난감 같은 재미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고 "내 음악을 듣는 분들이 작은 미소를 짓고 행복해지면 좋겠다"던 이진아의 목표는 달성된 듯 보인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가 진정 쉽게 쓰여졌으리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듯이, 이진아 역시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상당한 내적 갈등을 겪었으며 "작업 과정 또한 결코 쉽지 않았다"고 9일 진행된 음감회에서 밝혔다.
무엇보다 'K팝스타' 당시 쏟아졌던 극찬은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론 엄청난 심적 부담이었다.
"데뷔 앨범을 낼 때 어떻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도 많았고, 어떤 노래를 해야 하나에 대한 부담도 컸는데 쉽게쉽게 만들어내던 내 마음 속에 복잡함이 자리잡았다"는 게 'K팝스타4' 이후 2년의 근황인 것.
그런 이진아를, 유희열은 "기다렸다". 이진아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기를. 기다림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기존 가수들과 너무 다르니까 '저게 노래냐'는 시선이 있지만, 저는 '이런 친구가 드디어 나왔구나' 싶어 주목했거든요."
이미 유희열은 'K팝스타4' 당시 이진아의 손과 음악적 어법에 매료됐던 터다. 이 기다림은, 이진아를 발견한 뒤 느낀 선배 뮤지션이자 프로듀서로서의 즐거움이었고, 또 그런 이진아의 스승이 되기를 자청한 이로서의 일종의 '책무'였다.
"진아양은 워낙 본인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구축돼 있던 되어 있던 친구인데, 막상 하려고 하니까 겁이 많더라고요. 부모의 마음으로 봤을 때 '내가 너 정도 손이 돌아가면 나는 진짜 세계에서 무시무시한 음악가로서 세계에서 하고 싶은 음악 다 하겠다'고 말했어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된다'고, '너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앨리스'라고. (이번 앨범은) 그 벽을 깬 첫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진아와 유희열은 줄탁동시(啐啄同時)했다. 이진아는 "내가 생각하던 시야를 희열샘이 넓혀주신 것 같다" "안테나 덕분에 내가 생각했던 그림과 조금은 더 비슷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에 유희열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티스트가 있다는 걸 이진아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화답했다.
이진아와 안테나의 만남은 둘 사이에도 '윈-윈'일테지만, 덕분에 대중은 고맙다. 이토록 즐거운, 나아가 흥미로운 음악을 만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이진아의 시그니처"라는 이번 '애피타이저'가 벌써부터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하다니, 참으로 무섭도록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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