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70)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꼬장꼬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윤여정을 잘 아는 사람은 그가 연기 앞에선 누구보다 유연하고, 감독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천상 배우라고 한다.
이렇듯 프로의식으로 똘똘 뭉친 윤여정이 새로운 영화 ‘죽여주는 여자’로 관객들을 찾았다. ‘죽여주는 여자’는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며 먹고 사는 ‘죽여주게 잘 하는’ 소위 박카스 할머니 소영이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을 진짜 ‘죽여주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았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여정은 이틀 연속 이어진 인터뷰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자신을 ‘약장수’라고 칭하며 “인터뷰 보다는 연기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농담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유쾌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죽여주는 여자’는 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섹션 월드 프리미어에 초청돼 해외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에서는 각본상과 여우주연상 2관왕을 차지했다. 칭찬이 끊이지 않는 영화를 주연배우는 어떻게 봤을까.
“처음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정신없이 봤어요. 두 번째 봤을 때는 글쎄. 그냥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 반. 당사자는 잘 몰라요. 영화의 줄거리보다는 내 연기만 보면서 그렇게 보기 때문에.”
역시 그는 주변의 호평세례에도 중심을 잡을 줄 아는 베테랑이었다. 여기에 얼핏 보면 자극적이게 풀어내 이슈몰이를 할 수도 있는 소재를 담담하고도 불편함이 없이 풀어냈다. 이에 대해 윤여정은 이재용 감독에게 그 공을 골렸다.
“이재용 감독이랑 저랑은 담담하게 (연기와 연출을) 하는 스타일이에요. 울부짖고 포효하는 건 아니고. 이재용 감독이 그렇게 (담담하게) 연출할 줄 알았기 때문에 출연했어요. 요즘 한국영화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이고. 그렇게 연출할 사람이라면 제가 안했겠죠.”
애초에 이재용 감독은 ‘죽여주는 여자’ 시나리오 집필 때 윤여정을 염두해 놨다. ‘쓰고 싶다’고 말한 뒤 두 달 만에 윤여정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고. 윤여정은 “‘이거 나보고 하라고?’라고 물었더니 ‘그럼 누구보고 하라고 보냈겠어요?’라고 반문하더라”라며 작품에 합류하게 된 이야기를 전했다.
“저는 작품을 할 때 한다고 하고 그 감독을 믿고 하기로 했으면 딴지를 걸고 그런건 싫어해요. 시간 낭비지. 그럴거면 내가 시나리오를 써서 (하는게 낫죠). 나는 그럴 재간은 없고. 그가 써온 시나리오에 의미를 부여해서 해야죠. (감독은) 아주 수월하죠. 벗으라면 벗고. 입으라면 입고.”(웃음)
특히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 자살의 가장 전형적인 3가지 유형을 그려냈다. 중풍으로 인해 독립생활이 붕괴되면서 자존감이 파괴되는 것, 치매로 인한 자아상실에 대한 공포,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음으로서 오는 절대 고독.
“누군가를 죽여준다는 조력자 역에 대해 심각하게 오래전부터 생각을 했었어요. 죽여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서 난 죽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죠. 내가 이 여자라면. 아이를 입양보낸 뒤 이미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로 죽고 싶었겠죠. 그래서 나를 죽이는 심정으로 그들을 죽였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움직이지 못하고(전무송), 기억을 잃어가고(조상건),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독거노인(박규채)부터 트랜스젠더(안아주), 다리가 한쪽이 없는 장애인(윤계상), 코피노 어린이(최현준), 그리고 소영(윤여정). 현실에서 약자이자 소수자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윤여정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도 약자였던 적이 있어요. 예전에 미국에 있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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