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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허스토리`로 파격 변신한 배우 김희애. 제공| YG엔터테인먼트 |
“드디어 ‘내 연기 밑천이 다 드러나겠구나’라는 생각에 불안해졌어요. 그런데 시선을 돌리니 김해숙 선배님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똑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두려움이 우리를 나아가게, 그리고 뭉치게 했던 것 같아요. 자꾸만 작아지고 공포심이 커질수록 서로가 손을 맞잡았고, 더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카메라 앞에 섰죠. 촬영이 진행될수록 우리는 더 분명하게 알았어요. 얼마나 대단한 작품에 우리가 참여하게 됐는 지를요.”
단지 멋지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진한 향기를, 그러면서도 지치지 않는 열정을, 그래서 어떤 의미로든 매번 놀라운 결과를 내고야 마는, 배우 김희애(51)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본래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꾸만 더 빠져들었다. 가식 없이 진솔하면서도 은근히 돌직구다. 재치 있는 유머는 또 어떠한가. 포근한 기운이 가득한 가운데서도 단 한 마디에도 단단함이 느껴졌다. 어떤 면에선 영화 ‘허스토리’ 속 캐릭터를 닮아 있는 것도 같았다.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는 관부(關釜)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여배우의 선택권이 별로 없는 충무로에서 이런 시나리오는 너무 소중하다”고 운을 뗀 그는 “부끄럽지만 처음에는 ‘할머니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한 채 이야기가 너무 좋아 출연을 결심했다. 촬영하면서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고 깊이 반성하게 됐다. 외적인 망가짐? 그런 건 오히려 편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맡은 문정숙은 6년 간 관부 재판을 이끌어가는 원고단 단장으로 당시 부산의 여행사 사장으로 우연히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연을 알게 된 이후 부끄러움과 책임감으로 법정 투쟁을 이끈다.
여장부 중의 여장부로 파격 변신한 김희애는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고, 살은 5kg 넘게 찌웠다. 부산 사투리로 거친 언사도 서슴지 않고 툭하면 남성들과 드잡이를 한다. 김희애의 상징인 ‘우아함’과는 딴판인 모습이다.
“힘없고 연약한 할머니들이 정부의 도움 없이 일본 재판관 앞에서 소신껏 이야기를 했다는, 그 의미 있는 역사를 늦게나마 알게 돼 다행이에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본다는 게 배우의 가장 큰 축복인데 그것도 ‘문정숙’ 같은 인물이라니, 제겐 영광이죠. 우연치 않은 기회로 할머니들을 돕게 되는데 한 인간으로서의 당당하게 선 모습이 와 닿았어요. 촬영이 거듭할수록 얼마나 대단한 작품에 출연했는지 새삼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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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애는 관객들의 몰입을 위해 첫 사투리 연기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공| YG엔터테인먼트 |
그는 “그야말로 발연기가 따로 없었다. 부산 친구들이 도저히 못 듣겠다고 하는데 앞이 캄캄했다. 과외 선생님 외 다른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중엔 아예 억양을 외워버렸다”고 고백했다.
“캐릭터 자체가 처음부터 거리감 없이 또래 사람들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보통의 사람이라서 더 공감이 됐어요. (타고난) 영웅 같은 주인공이면 부담스러울 수 있었겠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성장해가는 모습에 쉽게 마음이 갔죠. 배운 것도 참 많았고요. 하지만 사투리가 어색하면 결국 몰입이 다 깨져버리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사투리 구사에 가장 신경을 썼어요.”
귀한 영화, 그리고 자신의 연기 인생 최대 도전이었다는 ‘허스토리’. 모든 작업을 마치고 관객과의 만남을 앞둔 기분은 어떨까. “내 연기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었고 그 분들(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누가 되거나 웃음거리가 될까봐 촬영 내내 너무나 두려웠다”며 그는 잠시 고개를 떨궜다.
“중압감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후회보다는 공포였죠. 고통스러운 과정을 모두 끝내고 나니 배우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정말 귀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신인으로 돌아가 카메라 앞에 섰었고 그 두려움과 고민, 아픔이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죠.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었던 제게 운명과도 같
끝으로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걸 배웠고 느꼈고, 또 앓았다”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 (어떤 의미로든) 분명 내게 굉장히 중요하고 대단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허스토리’는 오는 27일 개봉한다.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