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국회를 향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준표결을 요청하면서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들어 야당의 협조를 압박한 것이다. 18일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역시 "헌정사상 초유의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는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19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모두 다섯차례의 '대법원장 직무 대행 체제'가 있었다.
이중 4번은 1987년 민주화 이전이었고, 지금의 헌법체제 아래인 1987년에도 한번 있었다. 바로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고 대법원장 직무대행을 임명했다.
특히 당시의 정치 지형이 지금 상황과 유사했다. 4당 체제의 여소야대 상황이어서 야당의 협조가 필요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종필 총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 충청도 출신인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당시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은 당론으로 반대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민주공화당의 선택이 중요했다.
1988년 7월 2일, 국회는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표결 결과, 부결됐다. 믿었던 공화당의 표가 찬반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표결 결과를 받아 들고 노태우 대통령은 대법원장 직무 대행을 지명했고 이후 야당이 수용할 수 있는 이일규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국민의당 한 의원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얼마나 허술하면 '사상 초유의 사태'도 아닌데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청와대가 주장하는지 모르겠다"며 "대법원장 공백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법원장 적임자를 뽑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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