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불안과 저유가·미국 금리인상·중국 실물경기 둔화’그리고 ‘공급과잉·집단담보대출규제·원리금균등상환’. 올해 국내 주택시장에서 때 아닌 특수를 누렸던 건설업계가 국내외에서 각각 세 가지 어려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이면서 건설사들이 맞이할 연말은 성큼 다가온 겨울 만큼이나 추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3분기 1조5000억원이 넘는 해외 사업 부문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다음 달부터 ‘위기 극복을 통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모든 직원이 내년 11월까지 1개월씩 번갈아가며 무급 휴직에 들어간다. 임원인 경우에는 휴직 없이 일하며 한 달 치 월급을 반납하는 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시공능력 10위 안에 드는 상위 건설사들의 임직원 수는 지난 해 12월 말에 비해 571명 줄어들었다. 올해 주택 시장이 유례없는 열기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출 호조를 달린 현대건설이 96명을 늘린 것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10위 밖 대형사인 한화건설이 98명을,삼성엔지니어링이 506명을 줄인 상태다. 금융 당국과 시중 채권 은행이 연말 한계 기업 구조조정 대상 선정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면서 건설업계도 긴장하는 가운데 동부건설과 경남기업 등 중견 건설사들은 상반기부터 임원 인력 감축에 나선 상황이다.
국내 건설사들이 위축된 데에는 해외 시장 ‘텃밭’인 중동 지역의 긴축재정과 정세물안 때문이다. 지난해 말 유가하락으로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아랍에미리트 등 걸프협력회의(GCC)국가들이 긴축재정에 들어사면서 공사 발주를 줄이거나 계약을 연기하고, 사업비 지급을 늦추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데다 최근 들어선 IS 등 이슬람무장세력이 활개를 치는 가운데 ‘파리 테러’이후 정세 불안이 부각되면서 건설업계는 ‘제2 중동 붐’이 불기 전에 위기부터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발주를 늘리는 것에 앞서 진행 중인 공사 현장 안전에 먼저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IS가 테러 대상 지역으로 지목한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공장 공사 현장 인근에서 공사 중인 현대건설·GS건설·SK건설 관계자들은 “위험 지역인 만큼 별도의 경비업체를 고용해 함께 다니고 이라크 정부가 지원하는 경비조직 ‘오일 폴리스(Oil Police)·시빌리안 가드(Civilian Guard)의 지원도 받는 한편 이라크 정보국과 수시로 위험 체크를하면서 필요하면 군병력 증강을 요청하는 식으로까지 대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바스라 주에서 이라크 항만청이 발주한 6억9000달러 규모 알파우 항구 방파제 공사를 진행 중인 대우건설의 관계자는 “남부 지역인 바스라는 IS무장 세력이 활동하는 서·북부 지역과 거리가 있지만 정부와의 협력은 물론 회사 차원에서 따로 만들어 지난 10월 국제 표준(ISO 22301)을 받은 안전시스템을 바탕으로 본사-현장 모의 훈련, 실시간 위치 추적 등을 통해 비상 사태에 미리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업계에서는 ’제2중동 붐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살짝 도는 듯 했다. 올 초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외교‘에 이어 5월 유일호 국토부 장관의 ’중동 민관합동 해외건설 수주지원단 순방‘, 해외 인프라사업 지원을 위한 2조 여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 등 올 들어 정부가 중동 진출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뚜렷하게 보인 데다 지난 7월 미국이 이란과의 핵 협상을 통해 경제 제재를 풀기로 하면서 인프라 사업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분간 ’제2 중동붐‘에 대한 기대는 내년 이후로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50년 간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공사 계약을 통해 벌어들인 금액은 7000억 달러(827조3320억여 원)를 넘어섰다. 올해 1~11월 전체 해외 수주액은 392억8058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564억3445만 달러)에 비해 30%가량 줄어든 가운데 해외 시장 ’텃밭‘으로 통하던 중동은 아시아 에 1위 자리를 내 줬다. 발주 계약이 취소·지연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올해 1~11월 수주액 기준 중동 지역(146억4731만 달러)의 비중은 37%수준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 중동 지역(302억3330달러)의 비중인 54%보다 낮았다.
한편 국내 시장에선 미국 금리인상·중국 경기 둔화 등 대외 경제 여건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가운데 공급과잉과 대출규제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자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량을 줄일 예정이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분양(승인) 물량은 34만 가구 수준으로 올해 분양물량(51만 가구)의 64% 선이다. 천현숙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장은 “올해에는 분양가상한제가 사실상 폐지되고 청약제도가 간단해진데다 지난 해 말부터 있었던 각종 규제완화와 더불어 전세난 속에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등 시장 상황이 특수해서 건설사들이 국내 주택 시장에 주력한 측면이 있었다”면서도 “내년 이후에는 올해 같은 시장 상황이 이어질 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업계는 당분간 국내 주택 사업 호조에서 힘을 얻는 한편 ’해외 시장 다각화‘를 모색 중이다. 건설사들이 아시아와 북미 등으로 눈을 돌리는 가운데 베트남 정부가 발주한 1000억 여원 규모 ’흥하교량건설사업‘에는 현대산업개발·GS건설·대우건설·대림산업 등이 입찰에 참가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은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리는 한편 정몽규 사장이 동남아인 베트남을 직접 찾아가 장학사업을 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현장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말 사우디 최대 건설업체인 사우디 빈라덴 그룹(Saudi Binladin Group)의 제안으로 합작법인 설립 이야기가 오갔던 현대건설의 관계자는 “별 다른 진행사항이 없는 상황”이라며 “우즈베키스탄이나 동티모르 등 다른 지역 진출에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북미·중남미·중앙아시아 지역에도 눈을 돌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도 국내 주택 사업 비중을 늘리는 대신 캐나다 토목 공사에 처음 진출해 1.5억 여원 규모의 ’싸이트 씨 댐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식이다. SK건설은 북미에, 대림산업은 동남아 시장에
다만 마이클 나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중동지역은 여전히 가능성이 많은 텃밭”이라며 “발주가 취소되거나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프라 수요 등은 여전히 많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쉽게 돌아서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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