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 대금 미지급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한해 16조원에 달하는 공공공사에 대해 하도급 대금 직불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하도급대금 직불제는 LH, 도로공사, 지방자치단체 등 공사를 발주한 공공기관이 공사, 장비, 임금, 자재 등 공사대금을 원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하도급업체에 직접 지급하는 제도다. 당장 공공공사를 수주해 책임시공해야 하는 원사업자 입장인 종합건설업계에선 공사 감독 및 품질 보증 미흡 등을 이유로 8일 반대 성명서를 내는 등 강력 반발에 나섰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하도급자들이 대금을 직접 지급받는다고 해서 자재 납품업체나 덤프트럭 기사 등에게 제 때 대금을 지급할 지 의문이 든다”며 “전형적인 탁상공론식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종합건설업체로부터 하청을 받는 전문건설업계측에선 하도급 거래가 투명해졌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날 “중소기업의 가장 절실한 애로사항인 대금 미지급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직불제를 도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하도급대금 미지급 행위가 약 3567건에 달해 전체 하도급법 위반행위 중 61%를 차지했다.
문제는 공공공사 관행에 비춰볼 때 공정위의 이번 조치가 원청업체(갑)과 하청업체(을)간의 갑을 구조 개선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하도급업체(을)와 그 아래에 있는 납품업체(병)이나 건설 노동자(정)간의 수직적인 관계 개선엔 별 도움이 안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공정위의 이번 대책으로 인해 원수급자의 통제력이 더 느슨해져 하도급자의 ‘횡포’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대한건설기계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5년간 건설기계대여대금 체납현황을 보면 하도급체에 의한 체납 금액이 약 220억원으로 전체 체납액의 87%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전국건설노동조합도 지난 7일 “지난 설 명절 당시 악성 체불 23건을 조사한 결과 19건이 하청업체 때문에 발생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는 하청업체 입장만 볼 게 아니라 건설노동자들의 애환을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조달청이 운영하는 ‘하도급지킴이’ 등을 통해 공사와 관련된 단계에 있는 업자들을 모두 등록시키면 거래가 투명해지면서 하도급자의 대금 미지급 행위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하도급업체와 납품업자들 간의 계약은 개인 간의 도급계약이어서 하도급지킴이 등을 이용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영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금지급 체불을 없애기 위한 취지라면 현행 시스템 내에서도 발주자인 지자체가 원수급자를 잘 감시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하도급대금 직불제가 탁상행정이란 이유로 건설업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까닭은 ‘갑을 관계’를 개선한다는 이유로 오랜 갈등 관계에 있는 원청업체(종합건설업계)와 하청업체(전문건설업계)간의 이해관계에 직접 개입하러 나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공공사 원·하청 구조가 복잡하게 꼬여 있다는 점이다.
건설업계는 보통 세 가지 층위로 나뉜다. 종합면허를 소유하고 있는 원수급자와 도장 토공 등 전문면허를 소유하고 있는 하도급자 그리고 이러한 하도급업자 밑에는 자재업자가 위치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자재업자라 불리는 이들도 그 안에서는 종류가 다양해서 공사에 필요한 물건 등을 납품하는 업체와 노무법인에 속한 일용직 근로자 그리고 덤프트럭 등을 모는 특수노동자들이 있다. 문제는 현행 하도급법상 공정위의 감시영역은 원수급자와 하도급자까지라는 점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갑의 갑질도 묵과해선 안되지만 실제 관행을 보면 을의 병에 대한 횡포가 더 클 수도 있는 게 현실”며 “공정위가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간의 갑을 관계를 강제로 개선하려 하다보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하도급자와 그 밑에 있는 자재업자 간의 불공정 관행은 놓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하도급대금 직불제를 시행하면 고질병인 ‘대금 미지급’ 문제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현행 구조에선 원수급자가 공사 전체를 책임지며 하도급자를 감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통제력이 약해지면 또 다른 문제가 불거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원수급자와 하도급자 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오히려 발주처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민간 대형건설사들은 온라인 시스템 등을 통해 자신이 발주하는 사업에서 하도급자가 그 밑에 자재업자들에게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는지를 철저히 감시한다”며 “결국 공사를 발주하는 측이 원수급자를 제대로 감시하면 상당부분 미지급 지연 부문이 해결된다”고 밝혔다.
김영덕 건설산업연구원 연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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